문화를 학습하는 것은 힘들다..더욱이 이를 교육한다는 것은 더욱 힘들지 않을까..

퍼포먼스 반지하
드라마고


 초등학교 미술전담교사를 하던 시절 학교와의 잦은 갈등 중 하나는 초등의무교육과정을 다루는 교사가 정규교과서와 국가 단위의 교육과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리기 시간에 장애인물이 등장하는 동화를 구성한다거나, 비오는 날에 달팽이 채집과 빗물로 그림그리기를 하러 운동장을 뛰고 있는 모습, 달력을 오려 퍼즐을 만들고, 꿈을 그린 안대를 쓰고 복도와 교실을 헤매는 등 도무지 멋있게 채색이 완성된 그림이라곤 한학기가 지나도 나오지 않는 미술시간을 다른 선생님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경우는 학교 전람회에 낼 그림이 없고 처음 보는 학교밖 사람들에게 뭐라 설명할 처지가 되지 않는 것이 곤혹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미술대회에서 학생이 시상을 받으면 해당학교와 학교장등이 가산점을 받기 때문에 교사가 개입되는 미술대회용 그림을 지도하여 보내라는 요구를 받을 때도 있었고 때마다 할 수 없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한번은 어른들이 대신 그려주는 미술대회의 심사위원으로 가 다른 선생님들과 의기투합하여 학생 스스로 그린 미완성그림들로 시상목록을 작성한 재미난 사건도 경험하게 되었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학교를 그만두었다. 후에는 학교 밖에서 퍼포먼스극과 지역사진을 매개로 한 전시, 퍼포먼스와 시각문화 표현에 관한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여기에 참여하고 공동제작한 사람들은 작가나 학생의 입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닌 10대이거나 직장을 다니는 30대이거나 제도예술을 하지 않는 과거의 전공자들이었다.
 몇 년 동안 학교와 문화계의 근처에서 활동하며 알게 된 것은 문화란 각각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 따라, 그들이 사고하는 특성에 따라 매우 다르다는 것이었고, 제도적 장치들이 지닌 비대한 조직과 체계들은 결코 이런 일반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생활과 개인의 사유를 존중하는 문화을 편안하게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제도교육의 경우 7차교육과정을 실시중인데, 이에 많은 비판이 따르는 이유는 학교의 공간의 변화와 교사들의 교체 없이 놀이와 문화적인 활동을 구성하도록 되어있고, 지역과 학습자들의 특성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자유롭게 개발하고 적용하여 본 문화교육의 경험이 없어 다양한 문화관련 선택과목이 외면되거나 주요교과의 교과서와 학교 안에서라는 울타리에 다시 갇히는 폐쇄적인 문화를 생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사회속의 문화예술의 경우는 더욱 중요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국의 문화사에서 알려진 수입된 이론과 이를 확보한 특정계층의 의식과 교육관에 의해 문화가 학습되고 교육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이런 환경에서 문화를 인식한 사람들은 대학과 사회의 경쟁체계 속에서 생존하여 전문가 그룹을 형성하여 문화의 생산자가 되었고 일반인들은 문화의 소비자가 되어왔다.
 이런 지적과 다르게 지금은 모두가 각기 자신들의 문화적 표현과 향유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대중적 문화란 자본주의에서 만들어지는 소비 중심적인 취향이거나 문화를 계층적으로 나누어 계층의 유희로 생산되고 즐겨지는 것일 가능성이 많다. 한국 문화가 삶에 대한 철학과 공동체적인 의식, 개별적 정서에 대한 허용의 자세를 충분히 견지하지 못했던 역사의 축적은 쉽게 모두에게 문화를 자율적인 것이고 존중되어야 것으로 인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연대는 지난해 12월 문화교육위원회를 발족하고 교육전반이 문화교육의 입장에서 정리되고, 제도교육과 대안교육 모두에서 문화교육이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교육이념을 세워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각 위원회 별로 ‘문화와 정보의 지구화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문화적 기획’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동의하는 교수들을 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전교조와의 연대, 문화예술의 지도자들도 가세한 문화교육위원회의 활동이 지난 한국의 문화교육의 오류를 많은 부분 수정하며 진정 새로운 문화교육의 모델과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하여가길 기대한다.
 다만, 걱정스러운 점은 있다.
 이미 전교조와 문화계 지도자들이 국가나 기관들을 대상으로 정책을 논의하고 개입하는 활동을 한다거나 문화교육의 사례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이를 일반화 과정을 거쳐 사회에 유통시키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면, 실질적인 대안적 삶과 문화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서울중심가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대안적 삶의 자세를 지닌 주체들에 의해 개별적 환경 속에서 모색되어지는 문화-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대하여 이해하여 줄 수 있을 지다.
 비대해진 복지지향의 노조 전교조와 또다시 수입된 이론과 모델의 기준으로 대안문화를 구성하려는 자세를 지닌 일부 주류의 문화계 인사들이 모여 신자유주의, 식민자본주의 국가의 중심가에서 제도와 대안의 모든 문화를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이슈파이팅’하는 모습은 문화를 누리기 위해 삶과 생존을 넘어서야 하는 사람들에겐 다른 문화의 이야기일 수 있다. 
 발족식 당일 두명의 청소년들이 부른 랩의 가사가 담고 있는 내용이 그런 어른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힘겨운 일이라고 노래하였을 때, 사회자는 발음이 좋아서 좋았다고 짧게 멘트로 끝낼 수밖에 없었던 시간상-행사성격상-진행상의 더 커다란 이유에 대하여 문화교육의 맥락에서 이해하기란 문화의 차이와 그런 사람들의 무게로 힘들다.
 
 후기: 3회의 연재를 통해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의 활동에서 실제적인 활동가나 대안활동에 대한 내용을 다루지 못해 아쉽다. 많은 관심으로 문화연대를 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함께 하고 있는 시간은 매우 적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었고, 필자의 입장에서 주장에 편향되거나 글쓰기에 유연성이 부족한 문제들도 있었던 것 같다.
 문화연대 신문에 글쓰기를 제안 받고 스스로도 시도하고자 했던 중요한 시각은 문화연대의 활동중 지도층의 판단과 활동이 사회 주류적 입장에 서 있는 바가 있고, 조직 내에서나 사회문화일반에 미치는 영향이 순수한 활동과 지원보다 매우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입장에서 언론이나 정책을 중심으로 문화를 논의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타 문화예술관련단체들에서도 목격되고 논의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이젠 실질적인 대안적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현장성, 지역성, 개별성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문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대안의 준거로 삼았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 본다. 문화연대가 존재하듯 이 시대의 뿐만 아니라 문화란 삶의 가치와 존재에 대한 고민에 다가서는 곳에서 만나는 군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삶에서 스스로 삶에 집중하고 노력하며 타인들을 이해하고 서로를 지켜나갈 수 있길 하루의 반성과 함께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