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집필 - 반지하활동에서 창작된 글들을 모았습니다.
문화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 퍼포먼스 반지하
강선석
현대사회에서 삶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대중매체를 통해 쏟아내고 있는 무수한 광고들은 상품의 소비를 통해 개개인이 자율성을 확보하고 자기실현을 이룰수 있다고 과장된 몸짓으로 대중을 유혹하고 있다. 이런 환경속에서 상품은 개인의 생각과 삶을 대변하는 주된 표현매체가 되고, 이에따라 사회와 문화적 계층을 구분짓는 기준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중매체를 통해 방사되고 있는 강하고 빠른 비트와 파격적인 몸짓이 제 아무리 새로운 세대의 발칙함을 표현하는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하더라고 그 표현의 한계는 상업적 유통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발칙한 신세대의 몸부림은 대중매체의 상업적 이미지가 그리고 있는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나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소비사회에서 자율성과 자기실현이란 허구이거나 근원적인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의 자본은 끊없이 욕망을 생산해내고 대중들은 자신들의 공허한 삶을 대중매체가 만들어내는 신드롬들로 채워나간다. 그리고 상업성에 기반한 이러한 문화적 수요는 구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게 된다.
문화적 소외는 주로 중심과 지역간의 물리적 거리에 의해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물리적 요소가 문화적 소외를 판가름하는 준거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특정 문화를 문화적 전범으로 두고 그 외의 문화를 타자화하는 중앙집권적 권위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화란 계몽되고 생산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생성하고 변모하는 역동성을 지닌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에 기반한 지역성이란 문화적 다양성을 형성하는 주요한 환경으로 작용하게 된다. 모든 것이 상품화 되어 있는 현대사회에서의 문화적 소외란 오히려 구매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글로벌리즘과 네트웍이 주된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소유권을 확보하는 방식으로서의 '구매력'이외에 '접속능력'이라는 말로 달리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회시스템 내에서 구매력이나 혹은 접속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문화적 주체로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문화적 소외를 만들어내는 주된 요인 가운데는 문화에 대한 편견과 낡은 관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않다. 기존의 문화라는 개념이 특정의 폐쇄적인 장르개념에 따른 엘리트주의 문화활동이라는 관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적 주체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누릴수 있는 혜택에 불과한 것이다. 문화평론가 강내희씨는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문화사회로의 진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참여하는 문화활동으로서, 문화에 공적 개념을 더 적극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노하사회란 시민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문화적 공공성이 확보된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누구나 누릴수 있는(소유가 아닌) 문화가 살아있는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사회를 이루기 위한 실천적 노선위에 퍼포먼스 반지하(이하 반지하로 표기)가 있다. 반지하는 2001년 9월 활동을 시작하면서 특히 문화적 소외계층과 문화적 공공성에 주목하고 있다. 반지하가 말하는 퍼포먼스의 개념은 행위예술(또 다시 장르화된 예술)로서의 퍼포먼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들의 초기활동에는 공연의 형태로서 일정한 장소에서 미리 기획되거나 즉흥적인 연기로 이루어지곤 했지만 최근 1년여간의 활동들은 탈장르화의 강화와 더불어 지역주민들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활동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근래에 시도하고 있는 활동방식들에는 참가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상황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찰/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지역문화와 현실에 대한 나름의 비판의식을 도출하기 위한 워크샵이나 답사프로그램, 개개인의 삶의 이야기들로 구성하는 놀이극등 자율적인 시민문화를 위한 활동들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서 퍼포먼스는 현재 우리 사회시스템의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들, 생각의 차이와 표현을 통해 다양한 삶을 느끼고 이야기하면서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련의 활동들을 이르는 말이다.
반지하는 2003년 8월 4일 연수문화원이 기획하고 연수갤러리에서 개최한 '여러개의 연수구 전'에서 '버려진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주제로 신도시로서의 연수구의 또 다른 면을 드러내고자 했다. 버려진 물건들, 혹은 일상적인 사물들이 전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유래는 그리 멀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반지하가 연출하고 있는 장면들은 매우 생소하게, 어떤 이들에게는 불쾌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전시실에 작품의 자격으로 놓여있는 일상적인 사물들은 흔히 레디메이드(ready-made)나 오브제(object)로 불린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작가에 의해 선택되고 전시되는 사물들은 예술의 재료,형식,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나 반예술형식의 의미를 지닌다. 이 과정에서 기성품들은 그 일상적인 환경이나 장소로부터 옮겨지면서 본래의 기능이나 목적성을 상실하고 단순히 사물 그 자체의 무의미만이 남게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반지하가 전시실에 '버려진 물건들'로 공간을 구성하고 배치하는 것은 레디메이드나 오브제가 이해되는 이러한 맥락과는 매우 다르다. 오히려 반지하는 버려짐으로써 목적성과 기능에 기인하는 가치가 사라진 물건들의 의미를 되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버려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들은 마치 동시대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고고학적 탐사를 방불케 한다. 치밀한 현장기록과 영상으로 기록된 답사과정들, 그리고 수집된 쓰레기를 통해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게 된다. 흔히 고고학의 매력을 출토된 유물을 통해 먼 옛날 그곳에 살고 있었던 존재들과 대화함으로써 당시의 삶의 모습들을 재현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고고학은 이렇게 기록되지 않는 당시의 생활과 문화를 재구성함으로써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는 의의가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재현된 역사는 현재의 삶이 지닌 의미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버려진 물건들의 이야기'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고고학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의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볼수 있다. 버려진 물건들을 통해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버려지기까지의 일대기를 유추하는 과정에서 일상적 생활의 범주안에서 발견할 수 없는 또 다른 측면들이 드러나고 이를 통해 현재의 삶을 재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반지하가 출토한 연수구의 유물들에게서 어떠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것인가? 이것은 관람자의 세심한 관찰과 상상력의 몫이 될것이다. 어떤 이는 대량생산체재와 이에 따른 현대인들의 소비양상을 문제삼거나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염치없는 쓰레기 추기행위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는 이 물건들을 사용했던 이웃들의 고단한 생활이나 다복한 삶의 흔적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버려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유출하기 위한 해석작업은 현재 자신의 삶이라는 지평위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그들은 고고학자들처럼 좀더 설득력을 갖춘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버려졌던 물건들에 대한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의 이야기를 맞추어 볼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무더운 휴가철에도 불구하고 연수구의 곳곳을 다니며 '버려진 물건들의 이야기'를 준비해온 퍼포먼스 반지하 구성원 모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