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동구에서의 청소년의 일상을 만나며 느낀 점
    - 가난한 지역을 덮어버린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일상과 삶의 불평등 그리고, 집단 소외와 사라진 미래


드라마고 (퍼포먼스 반지하)

 

1. 심한기님의 기조발제에 이어,,
  오늘 토론회에서 여러분과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꼭 청소년문화의 지역간의 격차부분만이 아니라 아마도 나무의 단면도인 나이테와 같이 우리 사회의 공동된 역사와 문화의 바탕에서 다른 연령과 다른 삶의 조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동시대를 실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인 듯합니다. 지금의 한국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청소년과 시민들과 합의되지 않은 맹목적인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연을 사적소유화 하고, 자본을 축적를 기본적인 삶의 방식으로 지닌 자들이 이 사회 안의 많은 인간의 삶의 문제를 다루어 판단하는 제도와 풍토를 문화환경으로 지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일상의 공간과 관계 속에서 살아온 민중들의 역사와 문화를 때론 특정인들의 사유재산의 확대를 목적으로 한순간에 파괴하고, 사람과 삶의 가치를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많이 갖은자에서부터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자에 이르기까지를 구분지어 모든 이들의 전인적 정서를 파편화시키고, 다양한 문화를 보는 시각을 파괴하며 삶의 문제를 개발과 자본주의 소비문화로 덮어 통합하려는 시도를 펼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문화와 예술, 교육과 사회복지등의 타이틀을 빌어 여전히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들에게 생존의 기본적인 자원들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의 빈곤을 자신의 부족으로 인식하고 사회의 지원에 감사하게 하는 동일 사회내의 자본식민의식을 형성하고 있는지, 합의되지 않은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사회화를 구동하고 있는 지를 이해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민중들을 총체적인 억압의 틀에 묶어 두고 있는 이시대, 한국의 자본주의 문제를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식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요구하는 활동이 존재하는 데요, 그들이 지역사회속의 민중을 사적소유와 자본축적의 개인주의화로 분열시켜 결국 집단적 소외와 빈곤에 빠뜨리면서도 공동체적 삶의 대안에 대한 발상을 봉합하기 위해, 사회적 갈등과 과도한 노동을 전가시키고 있는 지를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의 태도란, 삶을 총체적으로 성찰하고, 공동체적 의식을 기반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면면을 살펴보고 정치나 경제, 산업의 방식이 아닌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의 회복 운동을 통한 극복의 가능성에 대해 저는 오늘 이런 활동의 필요와 총체적인 인식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물론 인천동구와 송림동의 이야기를 조금 하겠지만, 다시 말씀드리면, 저의 이야기는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나, 이 원고를 보시는 분들의 활동과 삶의 문제와 오늘 이야기하려는 불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와 별반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아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틀거리 때문에 가난한 지역사회의 청소년들의 삶과 문화의 불평등이 초래되고 있다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려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이 문제 상황에 대한 대응을 위한 목적을 지니고 활동하시는 분도 계시기도 하지만, 때론 우리가 이러한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삶이 상존하는 상황에 대한 파편적인 전문화와 피상적인 담론들로 인해 이 자본주의의 구조를 지속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여러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청소년기는 어떠했는가 입니다. 우리 모두가 청소년기를 보냈고,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은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청소년문화의 지역간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이야기할 때, 지금의 특정한 계층이나 상황에 있는 청소년들을 대상화시키지 않을 수 있는 태도는 청소년기를 보낸 나의 환경과 경험이 지금의 청소년들의 현실과 대화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특히 가난이나 장애, 성폭력이나 지역의 난개발등의 환경과 조건에 놓인 청소년들이었을 경우, 이들이 겪고 있는 삶과 생활의 조건이 사회적 공동해결의 여건을 지니지 못해 한정된 영역 안에서 스스로의 감내와 노력으로 많은 부분을 감수하여야 하는 집단적인 불평등의 현실에서 놓여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이해를 기반으로 폭넓은 문화활동의 목적과 태도를 설정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삶의 현실 자체가 문화영역이며 타인이나 사회에 대한 이해와 관계 맺기에서 매우 중대하고도 종합적인 조건이라는 것, 그리고 현재진행중인이라는 인식이 존재하여야 합니다.   
 특정지역이나 특수, 소외계층이라고 불리는 영역의 청소년들과의 활동에 참여(이는 기존 제도교육에서 활동하는 교육자들이 다계층의 학습자들 중에서 각기 다른 학습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는 내가 특정 경우를 잘 알고 있는 경우라면, 다시 청소년들의 현실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는 사회적 영역을 만들어가는 공동의 활동을 진행하면 되겠지만, 만약 겪어보지 못한 상황속의 청소년들과의 만남에서라면 나는 그들의 삶의 현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기반으로 활동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아이들의 현실적 문제를 외면한 중앙화 된 문화예술을 교육하거나, 시혜적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하거나, 경쟁적인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과 같은 방향성을 지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시행하였을 경우, 청소년은 스스로 자신과 삶의 주변의 문제가 지니고 있는 맥락과 구조를 파악할 수 없어 삶에 관계된 각 문제 상황들을 각기 개별적으로 대처하려하는 분열적 세계관을 지니게 되며, 자본주의 구조가 지닌 자본에 의한 계급화와 경쟁의 사회를 답답해하면서도 이를 쫓는 이중성을 인격화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좌시할 수 없는 현시대의 왜곡된 활동들이라 여겨집니다. 공동체적인 문화의 이해의 시각에서 청소년문화를 바라보는 것이란 청소년의 삶과 가정의 문제가 교육과 행정, 정치와 문화예술과 분리하지 않고 이 모든 것을 문화의 범주에서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거의 전체가 사유재산의 확대와 사회적 계급의 상위를 지향하는 자본지향의 도시론과 교육관을 지닌 상황에서 이를 다시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과 생활, 커뮤니케이션의 주제들인 인간의 노동, 삶의 시간의 가치, 자연의 의미, 공동체적인 사회라는 출발점에서 스스로의 존재와 문화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회복과 치유의 문화환경을 우선적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문화를 서로 다른 층위로 나누어, 문화산업과 문화예술, 문화교육, 사회복지 등으로 파편화 시켜 각기 다른 방향성의 프로그램으로 구성하여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루는 것은 청소년이 스스로의 문화 현실을 종합적으로 사고할 기회를 박탈해 가고 있습니다. 자신과 주변, 또래와 가족이 아닌 교육산업과 매스미디어가 주창하는 문화, 즉 중앙에서부터 서열화 되어 퍼져가는 중앙문화의 복제나 뒤쫓기 경쟁에 함몰하여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수용과 변이만을 거듭하는 현상이 아주 심각합니다. 가령 일부 청소년들이 청소년문화를 자생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음악밴드를 구성하고들 있으나, 자기가 속한 문화영역에서의 문제상황이나 경험, 성찰, 사회적 삶에 대한 다루는 음악보다, 카피곡이나 외국어 가사를 파편적으로 쓰는 행위, 의미의 확장을 고려하지 않고, 동어반복적인 언어를 음악적 언어로 이해하는 방식, 다른 사회적 성장을 위한 활동과 분리하거나 음악계의 경쟁과 산업성을 지나치게 인식하는 등의 행위는 청소년들의 스스로가 자기문제와 자기성장의 과정을 편협하게 하고, 실제 생활의 빈곤이나 생활의 불안정, 폭행의 피해자들인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으로 한국사회의 청소년문화 전반을 고찰할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가져옴으로써 청소년 상호간의 문화적 불평등을 그대로 넘기거나 조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에서의 삶과 괴리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지금의 청소년문화를 다루는 성인집단들은 이와 같은 문제의 어떻게 보시나요? 이런 활동들의 진행상황의 일부를 우리는 미군들을 위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 홍대앞 클럽에서 노래하는 젊은 밴드들의 주류가 위와 같은 방식으로 노래하고 있음을 또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문제를 꺼내는 것은 모든 노래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홍대 클럽 활성화에 얽힌 문화판의 노력은 청소년들의 사회적 진출의 중요한 시장이 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문화는 성장의 사회적 환경에 대한 범주를 문화의 대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한국의 지역사회의 청소년 문화 환경의 불평등은 자본과 중앙을 지향하는 대열로 꾸려진 파괴된 지역공동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각 지역의 특성과 상황이 존재함에도 모든 청소년이 자신의 삶과 괴리된 학습 환경과 내용을 통한 입시에 묶여 있다거나, 모든 가정의 사회적 가치실현이 자본의 획득으로 규결되는 도시화된 일상의 의식이 전면적인 상황, 자신으로부터 가까이 있는 문제 상황을 포함한 문화를 문화로 인식하지 못하고, 대중소비문화의 매체와 상품을 소비하는 문화가 지배적인 사회풍토에서 (그것은 자본을 많이 확보한 지역에서 삶의 질이 높게 획득되고, 자본이 적은 지역에서는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논리는 비약이나,) 실제적으로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지방으로 갈수록 자본축적과 소비력의 차이에 의해 문화의 격차가 발생하고, 이것은 곧 청소년들의 사교육의 기회와 문화활동 넓이의 격차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지역이 경제나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탈학교청소년들이 서울의 도시형문화 대안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나, 수도권으로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는 현상으로 지역의 청년들이 없어 인구구성이나 산업, 공동체의 심각한 균열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은 고교3년이 지난 청소년들은 꼭 진학이 아니더라도 하나도 남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까요. 이는 같은 지역 안에서도 개인주의화된 가정의 집합이 지역사회의 특성이 된 자본주의에서는 지역 내에서의 격차도 지니게 됩니다. 대도시로 진출할 수 없거나, 상업화나 산업화된 문화와 교육을 소비할 자본적 여력이 없는 경우가 스스로의 문화와 삶의 질을 낙후되거나 열악하다고 보는 경우가 많음이 그렇습니다. 실제로 살기 힘듭니다. 문화이전에 생존과 생활이..
 가령 오늘 이야기할 인천의 동구지역의 청소년들이 일상 속에서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들인 주거의 불안정, 가족의 해체와 결손, 거리에서의 신체적 폭력과 성폭행, 학교에서의 왕따 문제와 탈학교의 발생, 같은 도시 안에서 경제수준이나 개발정도에 의해 문화의 환경과 프로그램 질적 양적 격차가 발생하고 이 종합적인 한계망에 놓인 청소년이 지역사회 안에서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입시와 경제적 성공을 삶의 대안으로 설정하게 됩니다. 이는 지역적 격차를 지니고 있기도 하고, 지역내의격차도 지니고 있습니다. 일부청소년들은 자원의 확보나 지독한 경쟁의식을 통해 이 과정을 수행할 수도 있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지 못한 청소년들은 좌절하거나 역으로 폭력의 합리화나 맹목적인 욕구와 수단이 목적화된 활동에 익숙해지기도 합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교육시킨 개인주의화에 의한 지역공동체의 파괴현상이며 이런 지역 내의 격차는 빈곤의 세습이나 문제행동의 청소년들을 발생시켜 지역사회의 갈등을 증가시키고, 가난하거나 문제행동을 지닌 청소년들을 집단으로 묶어 소외시키기는 것을 아주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게 합니다.
 일상의 골목에서 두려움과 가정에서의 답답함, 전인교육을 포기한 입시기관인 학교와 경쟁구조와 개인주의화된 사회속에서 가장 어려운 삶을 겪는 것은 청소년들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문화는 청소년들의 이해와 참여로 구성된 것이 아님에도 성장기의 신체와 정서로 이 갈등을 목격하고 받아내야 하며 정체성과 세계관의 수립의 시기에 분열적인 자아와 사회를 내재화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종합적인 문제들풀어가는 길은 세상의 모든 것을 사유화하는 의식에 오염된 사회 속에서 각기 자신들의 문화를 지닌 소수자들의 생명과 생활을 규제적 정책과 무력을 통한 제재를 통해 집단적인 단죄하려는 자본주의 체제의 기득권자들 대한 대항과 대안교육의 구성과 참여, 대안적 지역공동체, 대안적 사회, 대안적인 사회활동을 구성하기 위한 실제적인 활동을 성인과 청소년들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이 청소년운동의 본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운동은 현재 자신의 이익을 위한활동이 아닌 청소년의 인권과 미래의 삶의 한계지어 놓은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죽이게 하여 점점 적은 수의 우수한? 사람들의 자본에 의한 지배가 극대화되어 가는 국제적 현실에 대해 청소년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구성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재개발의 현장에서 청소년이 포함된 세입자 가족을 집단적으로 자본이 없다는 이유로 주거단지에서 거리로 내쫒고, 거리에서 청소년들을 공터를 빼앗은 다음, 상업공간으로 채운 뒤 소비대중으로 취급 한다든지, 비전인적인 학교에서 인권을 묵살하고 입시와 자본주의 시민화의 복종하도록 강요하고 있음에 대해서 말입니다.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생활의 현장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두고 청소년의 문화를 논의하고 교육하는 시절이 없이 시간이 지나 이들이 다음세대의 성인이 되고, 자본주의자들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을 대할 우리의 미래사회는 세상의 모든 것을 사유화하려는 노력과 삶의 모든 가치를 자본으로 치환하여 축적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의 생명과 생활문화를 숙주삼아 넘치게 살아가고 가난하기 때문에 한정된 영역에서 오염되고 쓰레기를 먹고 마시며 사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행복과 소통과 놀이를 찾아보라고 말할 것이고, 몇몇의 처절하게 몸부림 치는 청소년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미친 세상에 우린 또 연탄이나 쌀이나, 롯데월드 자유이용권이나 게임용 컴퓨터나, 눈높이 수학책과 문화예술교육 쯤을 선물하면 될 것입니다.

2. 2004년 인천 동구지역 청소년 문화 환경
 실제 토론회에서 인천의 동구, 송림동, 송림동 그림수필의 사진들을 보며 이야기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관련된 스토리텔링과 사진을 이곳에 실지 못한 점 아쉽게 생각합니다. 송림동 그림수필에 대해서는 3기 청소년문화복지 아카데미 자료집이나 www.vanziha.net에서 관련 자료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송림동 그림수필의 이야기와 사진 슬라이드 보기.....

 ps. 요약문
당신의 청소년기는 어떠했습니까?
그 때보다 디지털과 문화예술이 좋아졌다고요/
그거 말고, 당신의 어린 시절말이어요.
그렇다면, 가족과 학교, 대화와 교감, 다양성의 존중과 사회적 성장의 경로들은 어떤가요?
아님 동네에서 거리에서 피시방에서 노래방에서의 청소년들은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떤 문화에 종속되어가고 있는 지 아시나요?

소설과 기사와 다른 현실에 대해 느끼시는 지요?
당신이 겪어 보지 못한 청소년기,
당신이 겪어 보지 못한 배고픔과
당신이 겪어 보지 못한 사회로 부터의 집단적인 소외와
당신이 겪어 보지 못한 폭력과
당신이 겪어 보지 못한 무시와 격멸
분노와 미움에 대해 당신은 지금 함께 고민할 준비가 되어 있나요?

공부 못하는 집단으로 불리면서도 공부하며 밑바닥을 지켜야 하고,
공동으로 왕따 당하는 현실을 모른체 주변의 친구들을 다양한 이유로 왕따시키고,
가난함을 극복하기 위해 같이 가난한 동네의 골목에서 좀 더 약한 자들을 털고,
피시방에서는 게임을
노래방에서는 유행가를 부르며
가난한 가정의 불화를 벗어난 가출에서 청소년 성매매와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낙태, 유기를 하게 되는 경우까지,
공부 잘 하거나 힘 쌔거나 돈 많은 것 이외에는 인정받을 것이 없는
남자들의 세계는 어떨까요? 법칙이 영화친구에 들어나고,
마리이야기에서 바다 속에서 무작정 곰탱이가 나타나는 꿈같은 현실이나 이야기하고,
노래들은 불려지지만 뿐 현실의 활동은 존재하지 않는
추상성의 극치의 시대에


세상이 바뀌어야 하지요.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인가요?
당신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여야 가능하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대안을 만들 수 없는 편식중입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증후군에 시달리시니, 당신도 치유하고
소외자들도 함께 살아갈 땅을 당신의 영역에 만들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이제 놀이의 확대와 취업이
꿈과 소유를 동일시하며 자본적 성공을 기본적인 기준으로
자신의 삶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스스로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여깁니다.
현실적인 경쟁에서 아주 우수한 성공을 거두는 일이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대단한 몇몇 친구들의 이야기가 되어 갑니다.


사라진 미래의 영역을 열기 위해서는
아방가르드의 투쟁보다 다양한 문을 열어 주는 것,
그 문에서 빗겨서 주는 것,
한정된 주제와 카테고리에 몰어 넣어는 안됩니다.
도시화와 전문화의 주제에서
자연과 공동체의 가치로 전환되어진 의식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요합니다.
공존에 대한 이해와 가치 추구 없이는 어디에선가 다시 소외와 차별을 만들고,
삶의 고통이 스스로에 대한 폭력이 되고 고통 속에 삶의 진행과 마감을 생각하며,
어두운 곳에서 비사회적 삶으로 규정되며 낙인되고,
이는 실제 현 사회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불가능케 합니다.
그것은 때때로 법률적, 도의적 단죄를 받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런 경우에 대해 어떤 대처를 고민하고 있으신가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사회의 현실을 알려주고,
자신이 삶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며
한계와 분리, 단절과 파편화된 지금의 사회와
교육체계, 사회운동과 활동의 개편을 필요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