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배다리골'이라는 곳이 있다. 동인천역 앞이다. 동구 금창동과 창영동, 송현동 일대를 아우른다. 예전에는 이곳에는 수문통 갯골과 이어지는 큰 개울이 있었고 밀물 때면 바닷물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배다리라는 이름은 배를 대는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배다리골은 흥미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근대와 현대와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고층 아파트와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근대건축물이 나란히 서 있다. 1960~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골목도 만날 수 있다. 배다리골의 시작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9년 한국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고 제물포에 조선 침탈을 위한 조계지가 만들어지자 그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배다리와 송현동, 수도국산 주변으로 몰려든다. 시장이 만들어지고 공장과 학교가 세워진다. 당시 중심 거리였던 우각로에는 외국인 여선교사 사옥, 창영초등학교 등 근대 건축물이 들어선다. 한국전쟁 후에는 고향을 잃은 피란민들도 모여든다.

 

 

 

시간의 마디를 더듬다

배다리골을 걷는 일은 우리 도시가 지닌 시간의 마디를 더듬는 일일지도 모른다. 배다리골에 드리워진 골목길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우리는 19세말과 21세기 사이를 훌쩍 넘나드는 경험을 한다. 시작은 동인천역 앞 중앙시장이다. 시장을 가로지르는 중앙시장길을 지나 배다리삼거리에서 배다리길, 우각로, 창영1, 금곡3, 창영5길 등이 이어진다. 중앙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한복상가 골목. 골목은 한산하다. 수십 여 곳의 한복 상점이 줄지어 있지만 문을 연 집은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한때 지방에서까지 한복을 사기 위해 찾아오던 곳이었지만 예전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인천의 상업 중심지는 주안역과 중구 쪽으로 옮겨간 지 오래다. 중앙시장을 나오면 배다리삼거리가 나온다. 건널목을 건너면 배다리길. 요즘 보기 드문 여인숙이 모여 있다. 길조여인숙, 성진여인숙, 진도여인숙 등 아크릴 간판을 내건 여인숙이 좁은 골목에 가득하다. 인천항에서 일하던 인부들과 먼 뭍에서 물건을 떼러 이곳을 찾은 상인들이 묵었다고 한다.

 

여인숙 골목을 빠져나오면 우각로가 시작된다. 왕복 2차선. 아스팔트가 깔린 큰 길이다. 한때 헌책방 거리로 유명했다. 30~40곳의 헌책방이 있었는데 새 학기가 되면 교과서와 참고서를 구입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로 붐볐다고 한다. 지금은 그것도 옛말이다. 헌책방은 서너 곳 정도가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문구 도매상점이 대부분이다. 거리 초입에 ‘아벨서점’이 있다. 37년 내력을 지녔다. 입구에 서면 책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옛 헌책방 거리의 한 시절을 가늠할 수 있다. 우각로를 좌우로 금곡3길과 창영길 등이 가지를 친다. 우각로는 개항장으로 들어온 서구 문물을 서울로 전하던 곳이다. 최초의 공립 보통학교인 창영초등학교와 미국 감리교회 여선교사를 위한 기숙사 등이 남아 있다. 모두 100년도 더 된 건물이다. 1920년대 문을 열어 인천의 막걸리 ‘소성주’를 제조했던 옛 양조장 건물도 있는데 현재 갤러리 스페이스 빔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미술, 건축 등 다양한 전시를 열고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실 등을 운영한다. 지역 커뮤니티인 셈이다.

 

 

골목길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

우각로를 중심으로 한 골목길의 얼개는 간단하다. 배다리길에서 창영교회까지, 큰 도로인 우각로가 이어지고 좌우로 각각 창영길 시리즈와 금곡길 시리즈가 펼쳐진다. 창영길 쪽으로는 지하철 1호선이 지나기 때문에 골목이 얕다. 꺾임길이나 갈림길, 계단 등 골목길의 풍경은 만나기는 힘들다. 부분적으로 5~10미터 정도씩 옛 골목의 흔적이 남아있다. 금곡길은 창영길 보다는 깊다. 꺾임길과 갈림길이 있고 담과 창문, 생활소품 등에서 골목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우각로와 주변의 골목길은 골목길이 재개발이라는 폭력에 어떻게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배다리골이 재개발과 도로 건설로 시끄러워진 2006년 이후 문화예술집단 ‘퍼포먼스 반지하’는 ‘기억과 새로움의 풍경’이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낡은 담벼락에는 벽화를 그렸고 버려진 옛 집터는 텃밭으로 가꾸었다. 학교 담벼락에는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그림이 그려졌고, 공동 주차장은 ‘나무그늘 주차장’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골목길은 더 이상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들게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낡고 후미진 공간이 아닌, 기분 좋게 산책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기억 또는 추억에만 머물러 있었을 골목길이 현재진행형의 살아 숨쉬는 풍경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배다리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난 큰 길이 송림로다. 이 길에 송림초등학교가 있는데 뒤편이 송현동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아직 골목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미나리길, 송림1, 총명길, 사랑마당길, 서해로, 동화로 등이 얼기설기 얽혀 있다. 길은 골목길의 전형을 보여준다. 좁고 급하고 꺾임이 많다. 골목길을 걷는 걸음은 급박하고 긴장한다. 호흡이 짧다. 전깃줄과 지붕선이 난삽하게 얽힌 스카이라인은 보기에도 어지럽다. 우각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현재 송현동은 일부 재개발이 진행된 상태. 마을 뒤편에는 동네를 굽어보며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동네 분위기는 활기차다. 아마도 초등학교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오를 지나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골목이 시끌벅적하다. 색조 분위기도 밝은 편이다. 도시형 한옥의 붉은 벽돌과 칠이 벗겨진 푸른색 대문, 회색과 흰색의 슬레이트 담, 초록색, 파란색 등 원색의 지붕이 어울려 밝은 분위기를 낸다. 중앙동 시장이 가까워서인지 미용실, 이발소, 세탁소, 철물점 등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오래된 가게들은 좀처럼 만날 수 없다.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는 아직도 배다리골의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마을 입구 공터에는 분홍색 컨테이너 건물이 덩그러니 서 있다. ‘중,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라고 씌어있다. 컨테이너 벽에는 배다리골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우리는 동구를 사랑해. 산업도로 절대 안돼. 그럼~’이라고 씌어있다. “우리는 이곳이 지닌 그대로의 숨결을 잊혀진 것이 아닌 동시대에 공존하는 물질로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발견된 지역의 노인들과 텃밭, 자연의 의미 등을 담아 2008년 구성한 지역환경미술 활동이 바로 ‘골목길에 뿌려진 씨앗 이야기’다. 배다리골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들의 말이다. ‘동시대에 공존하는 물질로 구축하는 작업’, ‘그 과정에서 다시 발견된 지역’. 전국의 수많은 골목길이 재개발, 도시재생, 재건축, 도시환경정비사업 등의 갖가지 명목으로 사라지는 지금, 다시 한번 천천히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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