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천 : http://artmu.moca.go.kr/user/sub/subView.do?contentsNo=589&magazine=201412&menu=INTERVIEW

    퍼포먼스 반지하

  • 골목미술-송림2동-2014-계단'모두의 시간'

    골목미술-송림2동-2014-계단'모두의 시간'

    16.골목미술-송림2동-드라마고 설치작업중

    골목미술-송림2동-드라마고 설치작업중

    3.골목미술-송림2동-2014답사사진

    골목미술-송림2동-2014답사사진

    4.골목미술-송림2동-2014-재활용화단'꽃밭에서', '서시'

    골목미술-송림2동-2014-재활용화단'꽃밭에서', '서시'

    5.골목미술-송림2동-담장수리도색

    골목미술-송림2동-담장수리도색

    6.골목미술-송림2동-담장수리도색2

    골목미술-송림2동-담장수리도색

    7.골목미술-창영동-2007-하루쉼터

    골목미술-창영동-2007-하루쉼터

    8.골목미술-창영동-2011-빛깔정원

    골목미술-창영동-2011-빛깔정원

    9.마을벽화-금곡동-2010-텃밭을 가꾸는 마을

    마을벽화-금곡동-2010-텃밭을 가꾸는 마을

    10.송림2동에서 바라본 송림6동-2004

    송림2동에서 바라본 송림6동-2004

    11.송림6동마을축제-2004

    송림6동마을축제-2004

    12.송림6동에서 바라본 송림2동 -2004

    송림6동에서 바라본 송림2동 -2004

    13.아파트로 재개발되기 전 송림6동 -2004

    아파트로 재개발되기 전 송림6동 -2004

    14.엄마가-만드는-마을동화

    엄마가-만드는-마을동화

    15.집수리미술-창영동-2008-오후의 바람

    집수리미술-창영동-2008-오후의 바람

    골목미술기념벽화-송림2동-2014-마주보는 달동네

    골목미술기념벽화-송림2동-2014-마주보는 달동네

    17.골목미술회의-2014-드라마고-송현동조합사무실

    골목미술회의-2014-드라마고-송현동조합사무실

  • 이선영 (미술평론가 indiansummer68@hanmail.net) 

    퍼포먼스 반지하(대표; 드라마 고)는 인천지역에 거주하면서 오랫동안 공공문화예술 작업을 해왔다. 올 한 해 동안 인천문화 재단과 현대제철의 민관협력 사업으로 진행했던 인천 송림동 지역에서의 활동을 소개한다. 한 분야에서 치열하게 활동해왔던 작가의 지속가능한 공공예술의 방식 및 대안의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이선영) 올해에 인천 송림동 지역에서 민관 협력 사업으로 공공문화예술을 진행하셨는데요, 이 사업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고,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고 작업하셨는지요?

    (드라마 고): 올해 초 인천문화재단으로부터 인천 동구의 지역기업인 현대제철이 지역공헌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주택에너지효율화 사업’을 문화적인 활동과 연계시킬 수 있을 지 문의를 해왔고, 재단에서 지원하는 그 작업을 맞아줄 수 있는 지에 대해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속한 생활문화협동조합 퍼포먼스 반지하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인천동구 지역에서 주민생활사를 기록하기, 공동의 주거환경을 수리하기, 마을이야기로 동화를 만드는 활동을 진행해왔습니다. 이 제안을 받고 바로 송림 2동지역을 추천했지요. 윗마을은 10여 년 전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아랫동네는 오랜 된 집들과 좁은 골목이 달동네의 모습을 상당히 간직하고 있지요. 10여년 넘게 재개발을 기대했지만 무산되었고, 지금은 주민들의 대부분이 노인이고 빈집들도 많아 마을이 슬럼화 되기 직전에 놓여 있었습니다.
    인천제철의 사업으로 집안을 조금 더 따스해지고 정돈할 수 있을 테니, 우리는 집들의 담장과 집들 사이의 골목을 정돈하기로 했지요. 갈라진 담장을 수리하고 집마다 색을 칠해 밝고 조화로운 골목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파른 계단들도 넓히고 버려진 시멘트 덩어리들로 화단도 만들었지요. 물길이 흐르는 골목도 만들고 송림동의 생활사가 담긴 시를 빈집담장에 적기도 했습니다. 작업에 참가한 ‘엄마작가’들은 주민인터뷰를 통해 7편의 동화를 창작하여 [엄마가 만드는 마을동화 2. 모두의 시간]을 출간하였습니다.
    이번 작업은 그동안 퍼포먼스 반지하가 진행해온 공동체예술의 거의 모든 방식들을 적용하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슬럼화 이전의 마을을 재생하기 위해서는 개별 주택의 수리와 함께 주민들의 공동의 공간이 필요하고 삶의 기억과 미래의 희망의 이야기가 나눠지고 예술에 대한 감상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민들이 이 과정을 목격하고 참여하여 자신의 기억을 존중하고 새로운 미래를 구상할 수 있길 바랬지요.

    ‘골목미술’, ‘집수리미술’ 같은 낯선 개념도 말씀해 주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진행되었습니까?

    ; 퍼포먼스 반지하는 지난 2007~11년 5년간 인천 동구 창영동에 마을지원센터를 운영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주민들과 식사도 하고 씨앗도 나누고, 문화교육도 하고 마을의 공간을 꾸밀 준비도 하였지요. 마을미술의 작업과정에서 주택의 벽을 색칠하거나 벽화를 그리는 일도 진행되었는데, 벽에 색을 칠하려 하니 많은 벽들이 갈라져 있고 물이 새는 등의 문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벽을 수리하는 재료와 방법을 알아보게 되었지요. 그 후로 한 집을 대상으로 할 때 기본적으로 주민과의 대화와 함께 집의 외부상태를 점검하고 보수작업을 시행한 후 작업을 이어갔지요. 다음으로 디자인된 색을 입히고 계단 등을 정비하고 화단에 식물을 심고 설치작품을 더하는 종합적인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하는 주택을 대상으로 한 공공미술을 ‘집수리미술’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올해 진행된 ‘골목미술’은 올해의 송림2동 작업을 골목에 집중하면서 쓰인 개념입니다. 평지인 창영동보다 노후화 된 주택이 더 많고 더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언덕동네 송림2동은 담장들의 보수도 필요하지만 깨지고 쓰레기가 쌓여가는 골목을 정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오래된 도시 달동네에선 집들이 생기고 남은 공간이 골목이 되었는데 번성하였을 때는 이웃들이 함께 누리고 관리되었지만, 공동화가 진행 중인 지금은 외면되는 공간이 되어 주민들이나 방문객에게 머물기 싫은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우선 주민들이 자신의 집 앞 골목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려면 골목정비가 필요했고, 이웃들이 함께 가꾸고 함께 생활했던 골목의 옛 모습이 복원되길 기대하여 ‘골목미술’이라는 말을 의도적으로 주민들에게 쓰며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사업은 오랫동안 공공문화예술 작업을 해온 퍼포먼스 반지하 뿐 아니라, 청년작가들과 개인작업도 함께 진행하는 작가도 함께 했는데, 본인은 다른 이들과 달리 거주형 작가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공공문화예술 현장에서 흔히들 구별되는 유목형과 거주형 작가 또는 작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 저는 송림1동에 살고 있지요. 조합사무실은 바로 옆 송현1동에 있습니다. 송림2동은 집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보다 도보로 1분정도 더 떨어져 있지요. 저희 단체가 처음 공동체미술활동을 진행한 곳은 건너편 달동네였던 송림6동 이었습니다. 2003~4년에 우리는 그곳에 살지 않으면서 거의 매일을 마을로 출근하여 빈집에서 아이들과 놀이방을 운영하고 주민들과 대안적 재개발에 대한 강좌도 운영하였었지요. 가을이 시작될 때쯤 마을축제도 운영하였는데, 활동이 끝나고 인천 서구의 거주지에서 겨울을 지내며 송림6동과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 지 매우 궁금했었지요.
    다음 해 봄에 찾아간 송림동은 철거로 폐허로 변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났지요. 그 경험은 ‘내가 진정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 책임지고 있는가?’를 고민하게 했습니다. 나만이 꿈꾸는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한 마을을 낮에만 만나는 것은 파편적인 것이고, 이웃이 아닌 이가 공동체와 관계된 작업을 한다는 것은 위선 같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 후로는 활동지역에 거주하며 아이들과 동네에서 만나고 이웃들과 주민으로 함께 이야기하는 활동이 곧 생활이 되었습니다.
    거주하면서 활동한다는 것은 소소한 일상의 만남을 통한 친근감과 그들의 생활과 이야기를 좀 더 조밀하고 통합적으로 느낄 수 있어 당시간과 공유된 공간, 당사자들과의 관계의 맥락에서 지역과 관계의 의미의 지점을 발견하는 것이 용이합니다. 밤에 술도 한잔 같이 하면서 가족사 이야기도 나누고 새벽 일찍 일을 시작하는 이웃들과 반가운 인사도 나눌 수 있지요. 방문자 입장에서 낮에만 만나는 마을을 통찰한다는 것은 웬만한 내공을 갖지 않고서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면 누구나 언제나 어느 곳에 완전히 머무른다는 것도 불가능하겠지요. ‘유목형’이라는 작업도 시대와 사회를 통찰하는 작품을 남길 수도 있겠지만, 마을작업에서 그 가능성을 높이려면 레지전시의 확장된 개념을 설정해야 합니다. 국어사전에 나오듯 한 지역에서 최소 30일 이상 낮밤으로 거주하여 주민의 입장이 되어 지역의 물질들과 이웃들과 관계 속에서 작업하는 경우라면 해당 작업은 작가의 인생의 한 부분이 될 수 있겠지만 짧은 시간 여러 곳을 다니는 ‘유랑’과 같은 경우, 그것이 역사적 공간을 인지하고 다니는 ‘순례’인지, 유랑으로 먹고 살아가는 ‘보부상’인지, 자신의 작업의 중요한 요소들을 찾아다니는 ‘수집’인지 등을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느낌으로는 한국의 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타 지역을 ‘유목’하는 작업들이 삶의 조건들에 대한 의식과 관계를 온전히 짊어지고 다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거주(내지 정주)작업과 유목과 유랑의 다양한 개념을 고찰하지 않아 거주민의 생활사를 존중하지 못하고 ‘마을’이라는 복잡한 시간과 공간과 관계의 영역을 단순하게 ‘작가작품’을 이식하는 캔버스로 여기는 경우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습니다. 더욱이 공공예술과 오래된 마을의 개념이 억지로 묶어 관광지를 만들어 도리어 주민들의 정체성이 미약해지고 심지어는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고 관광산업이 마을을 차지하는 일들도 많아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 사업 뿐 아니라 그동안 해왔던 대표적인 공공예술 작업을 소개해 주세요.

    ; 일상의 연속인데 무엇이 대표한다는 말은 살수록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현재가 그리고 당시의 누구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해를 돕고자 한다면, 지금의 송현동시기 이전에 창영동에서 5년간 거주하며 진행하였던 활동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업이자 생활이었습니다. 2007년 아트인 시티 사업을 시작으로 지나 2011년까지 인천문화재단, 인천관광공사, 동구청의 후원으로 많은 간섭 없이 지역에서 일상생활과 공동체예술을 함께 누리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현재 창영동은 그 흔적으로 40여점의 벽화와 10채의 주택의 도색, 두 어 개의 작은 공원들을 지니게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곳을 떠났고, 지방정부와 지역단체들은 그곳을 관광지로 만들고 있지요.
    소개하고 싶은 특별한 작업이 하나 있는데, 인천문화재단의 요청으로 진행한 2011~12년 섬 프로젝트 ‘소무의도-섬 집을 존중하다’가 있습니다. 재단 담당자들은 주민들의 공공미술에 대한 요청을 받아들여 정주형단체인 반지하를 보내 섬의 정서가 잘 담기고 주거 환경이 개선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자 했지요. 섬 집들의 공간을 섬의 물건들로 정리하였고, 섬의 대부분의 집들에 색을 입혀 바다 멀리서도 자신의 집이 잘 보이도록 했지요. 지역생활사를 담은 연극과 출판물을 남겼고, 주민들과 작업자들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염려를 지닌 관계를 형성하게 했습니다. 올해 여름 퍼포먼스 반지하는 여름캠프를 이곳에서 진행하여 당시 제작 벽화를 보수하게도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조금 안타까웠던 점은 우리 작업 후로 너무 많은 관광사업이 유치되어 섬의 고유한 모습이 도시처럼 변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작 관광객들도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요.
    현재는 작년에 이어 조합원 엄마작가들이 만드는 ‘엄마가 만드는 마을동화’ 시리즈 출판과 저의 지인들과의 대화글쓰기 작업인 ‘인연어 대화’ 출판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퍼포먼스 반지하가 공공문화예술 작업을 처음 시작했던 때와 요즘의 현장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 퍼포먼스 반지하의 자발적인 첫 작업은 ‘디지털 인천하우스’라는 오래된 동네들에 대한 사진과 영상 기록 작업이었습니다. 제가 혼자 사진으로 시작한 해는 1999년이고 아내와 함께 영상을 시작한 것은 2001년 이었지요. 점차 지인들이 촬영과 글쓰기 작업에 동참하며 추후에 축적된 자료를 공간구성과 참여프로그램이 있는 종합적인 전시회를 구성하였습니다. 당시 자발적 작업을 지원받는 다는 것은 생각해 보지 못했지요. 전시공간은 무료대관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교직을 하고 있어 가능했지요.
    다음의 자발적 작업으로 다양한 장르의 청년작가들이 모여 사회적 이슈에 대한 퍼포먼스를 거리에서 공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의 간절한 표현욕구들이 모여 아무런 지원금이 없이 자발적인 모임과 워크숍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서울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목표가 있었지요. 이 작업을 위해 교직을 그만두었지요. 후로 공연비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늦은 밤 서울에서 차가 끊기면 멤버들과 밤새 길을 헤매기도 했고, 인천 거주지 사무실에 모이면 모든 안주는 만들어 먹었고, 사진과 악기 등의 기자재를 공유하는 활동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어 내었지요. 사실 빚은 좀 쌓여 갔습니다. 생활비 포함하여 1300만원이 넘는 빚을 향후 5년간 갚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활동이 가능했던 것은 작품생산이 의지와 함께 관계의 문제가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리더를 따라주면서도 멤버들이 각자의 특성과 표현을 존중하고 조화로움을 찾으려 했었지요.
    최근 들어 청년작가들이나 공공예술을 전업하는 작가들로부터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지원 프로그램들은 많이 늘었지만, 대부분 공모과정을 거쳐야 하고, 선정된다 하여도 생활에 충분한 보상은 되지 않지요. 공공예술은 사회적으로 부족한 공공영역의 활동을 보충하는 역할을 하는데 있어 매우 고급스러운 예술 활동을 동원하면서도 매우 인색한 보상을 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예술작업의 공공성을 잘 인식하지 못해 충분한 지원와 존중을 제공하지 못하고 작가들 또한 자신의 작업의 공공성을 지켜나가는데 있어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 고민하는 형국이지요. 공동작업과 공공작업이 공동의 생활의 어려움을 완화시켜주거나 주변의 소소한 도움으로 어렵고 긴 작업의 여정을 지탱시켜주던 시절도 지나 먹고사는 문제는 각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 당연스러워졌지요.
    이는 결국 지원프로그램이나 보상이 주어지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작가들이 헤쳐모이는 일이 일어나고 운 좋게 보상도 받고 이름도 날리는 경우가 되면 좋아하는 경향도 있어 보입니다. 정작 예술작업의 자유와 예술의 비판성과 같은 사회적 역할은 축소돼 것 같습니다. 이야기들을 하지 않습니다. 교사와 교수 같은 안정된 직업이 있는 작가들은 이 예술사회를 위해 공헌하지 않지요. 작가들은 기획 서에서 자신만의 언어가 아닌 대중을 향한 언어를 쓰기에 비슷해 보이고, 자신의 생애와 작업의 연결점보다는 프로젝트의 연결점이 작품의 세계가 된다거나 신문과 방송에 알려지면 좋은 작품과 좋은 작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믿어가고 있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홍보도 같이 하지요. 기획사처럼 말이죠.
    저는 예술 활동의 출발과 지향은 자유로워지기 위해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탐구하고 생활과 생계를 위한 일도 하고 타인과 이야기와 마음도 나누고 시대와 사회를 비판하고 꿈꾸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생산과정이 모두 모여 생애와 작품이라는 의미를 불러옵니다. 그것을 개인적인 측면에서 스펙트럼화하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삶의 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찾아가는 것이 작업이 되고, 예술이 지닌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반성이 모두 함께 수행하여야 예술작업이 되는 것이지요. 기술이 강조된 장인정신도 이 정도는 고민합니다. 각기 다른 특성과 진정한 다양성은 여기서 생기는 다른 모양이겠지요.
    먹고 살 수 있어야 작업이 되고, 지원 사업이 있어야 몇몇은 먹고 살고, 신문과 방송에 소개되어야 성공한 작업이 된다고 한다면 먹고사는 문제에 묶여가는 민중들에게 예술이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자위를 지원받는’ 활동으로 보여 함께 나눌 대안의 삶의 방식으로 공유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도 먹고 살기 어렵습니다만 여전히 꼼꼼히 글을 써야하고 지인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현장을 다시 둘러보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주민들을 배웅해야하니 걱정입니다. 돈을 많이 벌 전략과 꼼수는 제가 별로 좋아하는 태도가 아니지요. 좋은 사회는 공동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이와 그 일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사회이겠지요. 공모가 아니어도 말이지요.

    공공예술의 성격상 취약한 계층이나 장소에서 많이 진행되곤 하는데요, 대안적 개발은 어떤 것이고, 여기에서 작가는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 2003년 재개발지역에서 공공예술을 시작할 때 재개발에 대한 대안의 구상은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켜줄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차피 없어질 동네, 먹고 살기 어려운 처지, 땅이 부족하고 할 일은 줄어든 형편 등등의 이야기들에 대한 대답이 필요했지요.
    주변 어디는 노후화된 주택을 밀어내고 고층 아파트를 짓는다는데, 그러면 집값이 몇 배는 뛰었다라는 부러움은 재개발을 부축일 수는 있었지만, 실재 철거가 되고나서야 넓어진 아파트 평수로 가려면 추가부담금과 매달 나오는 몇 십만 원의 관리비를 내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작은 집을 내준 주민들은 주택교환 딱지를 팔고 인근에 비슷한 마을로 이주하여 갔습니다. 이는 재개발 아파트의 재 입주율이 평균 20% 미만이라는 사실이 증언합니다.
    이 방식으로는 본인은 늙어가고 자녀들은 커가는 시간과 미래의 모습을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보상금에 이웃들과의 관계와 자발적인 마을활동, 스스로 만드는 나의 집과 마을이라는 희망을 맞바꾸면서도 좋은 삶과 좋은 마을의 구상은 백지 상태이니까요.
    대안적 재개발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 과정을 말해보겠습니다. 집들이 노후화 되었고 불편하니 재개발은 해야 합니다. 마을단위 회의에서 대안적 재개발에 대해 합의 하고 개인들이 갖은 경제력을 모아 기금과 재단을 만듭니다. 빈집들을 포함하여 약 10여 가구씩 작은 블록단위로 개발을 시작합니다. 주민들은 마을의 기금을 통해 단층의 집들을 이층으로 재건축합니다. 집의 개수는 같거나 증가하였고 골목은 넓어집니다. 건설된 주택에 노인부부들이 1층으로 재입주합니다. 다음으로는 젋은 가구가 이층으로 이주합니다. 새로운 이주민이 들어오면서 건축비용의 일부는 갚을 수 있습니다. 주민들은 재건축과정의 노동자가 됩니다. 주민들은 노동참여로 건축비를 아낄 수 있고, 소득이 없던 이들은 전업으로 참여하여 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근의 다음 블록이 같은 방식으로 재건축됩니다. 공간의 여유가 생긴 골목에는 공원과 텃밭을 만듭니다. 아래층에 사는 노인부부와 위층에 이사 온 젊은 가족이 공원에서 만나고 함께 텃밭을 가꿉니다. 블록 단위의 재건축이 중반쯤에 이르면 미리 마련해둔 공동소유의 땅에 마을회관을 짖습니다. 일층은 자치센터와 주민들의 공동작업장이 들어서고 이층에는 도서관, 카페를 운영합니다. 삼층에는 교육실과 모임방을 만들지요. 이 모든 과정에서 주민회의와 활동교육을 통해 개인의 생산능력도 높아지고 이웃 간의 소통과 나눔, 공동의 성과에 대한 기억도 갖게 됩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체가 대안적으로 재개발된 마을에서는 마을이 완성된 날이 기념일이 되고 주민회의를 통해 마을의 변화를 결정하며 평소 이웃 간의 나눔과 공동공간에 대한 공동관리가 잘 이뤄질 것입니다.
    이 과정에 필요한 기술과 인력을 상상해 본다면 예술가가 함께 할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예술가들이 마을작업에 앞서 이해하고 경험해야할 바가 무엇인지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은 이 구상을 디자인하여야 하고, 이를 언어로 정리하고 설명하여야 합니다. 건축과 소품 등을 디자인하고, 주민들의 협의와 진행과정을 기록하여야 합니다. 건축과 인테리어에서 각 연령층에 맞는 행동특성을 반영하고, 연령별 활동과 함께 다른 연령층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공공공간디자인과 활동프로그램을 개발하여야 하며, 그것을 공유할 마을신문이나 홍보물을 제작해야 하지요. 마을이 완성되고 이뤄지는 축제에서 과정의 다큐멘터리는 영화로 상영되고 사진과 그림으로 전시되고, 기념비적인 조형물은 모두를 위해 작고 소박하게 만들어져 오래되어도 철거되지 않을 것이며, 기념의 노래는 합창과 공동의 춤으로 표현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주민들은 진정한 마을의 주인이 되고 공공예술가의 삶과 작업은 생태계속에서 존중하게 될 것이며, 모두는 보편인 공동체적 삶과 특별한 공동작업과 자신의 생애적 작업의 맥락을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삶은 사실 이 마을들이 생기면서 있었던 일들에 그동안 축적된 지혜와 예술을 첨가한 것 뿐 입니다. 저는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은 꿈을 지니고 다시 공공예술작업을 진행한 송림2동의 안으로 내년 봄 이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