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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디자인, 너무 귀여워!
기사제공 mbnart 2009-05-20  조회: 80898 댓글: 0

서울시, 2009년 벤치 의자 디자인 공모전 수상작 발표



서울시는 20일, 시민에게 공모한 의자와 벤치 디자인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월등히 높아진 참여율 때문에 심사와 수상작 선정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1, 금상 : <경험, 흔적, 기억 ...담다...>, 디자인 한 이 : 김헌, 최미경, 임경욱



앉았던 자리의 모습을 벤치가 기억하고 있다는 설정은 재미있으면서도 제법 묵직한 감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벤치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휴식에 비해서 기억하기 힘든 존재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가 앉았던 만큼의 짧은 휴식을 기억해주는 의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한 번쯤 뒤돌아 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 흔적은 곧 지워지고 새로운 기억들이 다가와 생기고 또 사라진다. 마침내 벤치는 아무것도 공유할 수 없는 무감의 사물에서 나름의 흔적과 파장을 기억하고 있는 감정을 가진 사물이 되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까. 우리 안의 어떤 외로움이 벤치와 기억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을까. <경험,흔적, 기억...담다...>이라는 작품의 제목에 말줄임표가 많이 들어 간 것을 보니 분명 이 응모팀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며 만들어 내는 흔적과, 그 만큼의 아픔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 본 분들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김헌, 최미경, 임경욱 세 분의 공공 응모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수상자들이 다음의 시를 알고 있었는지 몰랐는지는 모르지만, 훌륭한 시적 변주로서 문학과 디자인이 멋지게 결합한 한 예로 손색이 없다. 시인 문인수는 그의 짧은 시 10월에서 흔적의 외로움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10월

          문인수

호박 눌러 앉았던, 따 낸
자리

가을의 한 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2, 금상 : <Rain Waterway Bench>, 디자인 한 이 : 최정우



다음 작품은 벤치가 한 그루의 나무에 물을 건네주는 따뜻한 생태주의적 상상력을 지닌 작품이다. 애초에 비가 내리면 저런 디자인 없이도 나무는 물을 먹을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본 작품의 의도를 잘 못 이해한 것이다. 이는 기능으로서의 디자인이라기 보다는 메시지(message)로서의 디자인에 더욱 충실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즉, 이 디자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너무나 선명하다. "당신은 누구에게든 물을 건네기 위해 온 몸을 바쳐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사람이든, 한 그루의 나무이든, 혹 자기 자신이든."



작품의 전체적인 형태는 경쾌하고 선명한 직선이 모인 다소 투박한 외형이지만 그것이 이루는 이미지는 사뭇 따뜻하고 부드럽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벤치는 나무에게 미안해 하며 몸둘 바를 모를 것만 같다. 조금만 비가 내려도 벤치는 온 몸을 바쳐 나무에게 물을 건네준다. 나무는 벤치의 도움 없이도 잘 자랄 수 있겠지만, 벤치의 도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나무는 생명없는 벤치에게 고마워하며(사실 그런 의자를 만들어 준 사람에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그리고는 어느 여름 날, 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물건을 팔러 다니거나 실직의 나날을 견디고 있는 한 사람에게, 혹은 사랑의 밀어를 나누는 철없는 젊은 연인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물해 줄 것이다. 디자인은 세대를 뛰어 넘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이자 메시지이며, 이렇듯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작고 연약한 생각의 현실태이다.


3, 대상 : <D.I.Y Bench> 디자인 한 이 : 주준희, 우선하, 서호성
 
이 그림만으론 얼핏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있고, 작고 조밀하게 모여 있는 원들. 이게 뭐지? 의아해 하는 독자들을 위해 다음 사진을 공개한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대충 이해할터이지만, 아직도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만큼 이 디자인은 신선하고 재미있다. 원통형의 나무를 끼워 놓은 벽면은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새침한 아가씨는 낮은 곳에 워통형 두 개 정도를 뽑으면 훌륭한 의자가 될 수 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하나씩 뽑아가면서 위로 올라 가서 앉아 볼 것이다. 둘이라면 다섯개 정도의 나무를 이용해 넉넉한 공간을 만들어도 된다. 이른바 비정형성이 본 작품의 최고 미덕이다. 앉을 사람 마음대로 의자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상상과 창작의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았다는 것은 이 ready-made 도시에서 얼마나 큰 여유인지 아는 사람만 안다. 뇌의 어느 부분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전두엽(?) 돌아 가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지 않는가?


이 외에도 올해는 공공디자인에 대한 높아진 관심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공모전에 응해 예년에 비해 많은 수의 작품이 출품되고 또 선정되었다. 그것은 공공디자인 사업을 실행해 나가는 자치단체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시민은 이제 더 이상 관의 디자인 사업을 이해 못하고 방관하는 제 3자가 아니라 당당히 공공디자인 사업의 새 주체로 떠오른 것이다. 상식적인 원칙의 재확인이 되겠지만, 공공디자인은 정치인의 것도, 디자이너의 것도 아닌 바로 시민 자신의 것인 것이다.

특히 이번 공모준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상상력은 기성 디자이너에 비해 전혀 뒤지지 않을 뿐더러 어떤 '대안'으로도 읽힐 수 있는 수준이다. 전체적인 레이아웃이나 디테일에서 조금은 서툰 면이 없지 않지만 디자인이라는 것의 본령은 사실 idea에 있는 것이고, 또 그 아이디어가 얼마나 인간자신에게 긍정적인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러한 작은 단점은 충분히 눈감아 줄 만 하다. 

이에 공공디자인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공무원이나 기성의 프로페셔널들은 이들 작품에게서 핵심적인 키워드를 읽어 낼 수 있어야 하겠다. 그 주제어는 바로 참여, 환경, 인간 자신 등을 들 수 있다. 공공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자치단체장들도 이런 주제어가 가지는 철학을 모르는 것은 아닐것이다. 다만 현장에서 공공디자인을 진두지휘 하다보면 여러가지 현실론에 부딪혀 공공디자인의 본질이나 혹은 특화점을 종종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특히 요즘의 공공디자인 사업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추측은 거의 확신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일단, 사업부터 벌려보자는 생각, 공사는 마무리 짓고 보자는 생각, 디자인보다는 행정적인 효율만 따지는 생각, 다수의 '사람들'보다는 개인의 정치적 행보에만 쏠려있는 생각들 말이다.

한편 시상식은 6월 8일 시청 서소문청사에서 개최되고, 수상작품은 6월8일부터 전시를 통해 시민에게 공개된다.

아울러 서울시에서는 수상작 가운데 선별과정을 거쳐 2009년 10월 9일부터 29일까지 개최되는 ‘서울디자인올림픽 2009’(잠실운동장)에 실물로 제작 · 전시하여 시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수상작에 대한 작품집과 매뉴얼을 제작하여 시민이 함께하는 디자인서울을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배포할 예정이다.


mbn art & design center 유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