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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벽화 -「사찰벽화」venuslv 2003.04.19 0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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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벽화 - 「사찰벽화」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동산을 보시한 후 이와 같이 생각했다.
부처님께서 만약 허락하여 주신다면 나는 장식하고 싶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가서 말씀을 드렸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뜻대로 가서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허락을 들은 다음 온갖 채색을 모으고, 아울러 화공(畵工)들을 불러서
어느 채색으로 그리는 것이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들은 어디부터 제작하여 어떤
것을 그리고 싶으냐고 다시 물었다. 장자가 나는 잘 알지 못하겠으니 마땅히 부처님께
가서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자여 문의 양쪽에는
마땅히 집장약차(執杖藥叉)를 그리고. 그 옆의 한 면에 대신통변(大神通變)을 그리며,
또한 면에는 오취생사(五趣生死)의 수레바퀴를 그리고, 첨하에는 본생사(本生事)를
그리며, 문 옆에는 지만야차(持 夜叉)를 그리고, 강당에는 늙은 비구가 법요(法要)를
선양하는 모습을 그려라. 식당에는 음식 든 야차를, 창고문에는 보배를 가진 야차를,
안수당(安水堂)에는 물병을 가진 용이 묘한 영락을 붙인 그림을 그리고, 욕실과 화실에는
천사경(天使經)의 법식에 의한 그림과 약간의 지옥변상(地獄變相)을, 첨병당(瞻病堂)에는
여래가 몸소 병을 간호하는 상을, 대소행처(大小行處)에는 시체의 모습을, 방 안에는 마땅히
흰 뼈와 해골을 그려라.≫
위의 내용은『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毘那耶雜事)』라는 경전에
기록된 최초의 불교그림이자 불교벽화인 기원정사(祇園精舍) 벽화에 관한 내용으로,
우리 사찰에 남아있거나 그려지는 벽화도 위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불교벽화는 벽의 위치와 성격에 적합한 다양한 내용의 그림을 그려 넣어
불교의 사상과 이념을 표현하였으며, 이를 통해 중생들을 교화하고 신앙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불교벽화에 관한 기록은 불교가 전래되어 국교로 공인된 삼국시대부터 꾸준히
등장하여 다수의 예가 전하기는 하나 모두 현존하지 않고, 실제 남아있는 벽화는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개채되거나 새로 조성된 것이다.
벽화는 건물의 일부로서 건물과 수명을 함께 하는데, 각종 전란이 빈번했던 우리
나라는 오래된 건물 자체가 드물어 고려시대의 벽화로는 부석사 조사당의 몇 점과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 모사도가 전부이며, 조선 전반기까지의 작품 또한 단 몇
점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피해가 극심해 전 시대까지
천년 이상 면면히 이어져 불전(佛殿)을 장엄했던 화려하고 우수한 불교벽화의
전통이 상당부분 단절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대부분 단청과 함께 조성되는 관계로 단청의 일부로 치부해
큰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벽체의 제작형식이나 조성방법 또한 많은 부분이
왜곡되고 간소화되었다. 특히 촉박한 제작기간과 비용에 비례하는 관행으로 인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생략되기도 하고 재료의 품질저하와 잘못된 운용 등으로
벽화의 수명이 한 세대를 넘기기 어려운 경우도 흔히 발생하고 있다.
또한 각종 불사(佛事)와 건물의 보수공사 때 인식부족으로 인해 많은 옛 벽화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사찰에 그려진 벽화는 탱화와 달리 그 특성상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그리기도 어렵고 보존과 관리 또한 어렵다. 그러나 불교벽화는 미술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님과 동시에 표현 형태나 양식·소재 등은 불교사상을 밝혀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자료가 되며, 불교회화의 원류로서 소중하고 당당한 우리 미술의 한 장르이다.
현재 전통 불교벽화의 조성방법과 보존방안 연구는 절실한 실정이나, 현실은
무관심속에서 방치되다시피하고 있다.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동산을 보시한 후 이와 같이 생각했다.
부처님께서 만약 허락하여 주신다면 나는 장식하고 싶다. 그리하여 부처님께
가서 말씀을 드렸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뜻대로 가서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허락을 들은 다음 온갖 채색을 모으고, 아울러 화공(畵工)들을 불러서
어느 채색으로 그리는 것이 좋겠는가 하고 물었다. 그들은 어디부터 제작하여 어떤
것을 그리고 싶으냐고 다시 물었다. 장자가 나는 잘 알지 못하겠으니 마땅히 부처님께
가서 물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장자여 문의 양쪽에는
마땅히 집장약차(執杖藥叉)를 그리고. 그 옆의 한 면에 대신통변(大神通變)을 그리며,
또한 면에는 오취생사(五趣生死)의 수레바퀴를 그리고, 첨하에는 본생사(本生事)를
그리며, 문 옆에는 지만야차(持 夜叉)를 그리고, 강당에는 늙은 비구가 법요(法要)를
선양하는 모습을 그려라. 식당에는 음식 든 야차를, 창고문에는 보배를 가진 야차를,
안수당(安水堂)에는 물병을 가진 용이 묘한 영락을 붙인 그림을 그리고, 욕실과 화실에는
천사경(天使經)의 법식에 의한 그림과 약간의 지옥변상(地獄變相)을, 첨병당(瞻病堂)에는
여래가 몸소 병을 간호하는 상을, 대소행처(大小行處)에는 시체의 모습을, 방 안에는 마땅히
흰 뼈와 해골을 그려라.≫
위의 내용은『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잡사(根本說一切有部毘那耶雜事)』라는 경전에
기록된 최초의 불교그림이자 불교벽화인 기원정사(祇園精舍) 벽화에 관한 내용으로,
우리 사찰에 남아있거나 그려지는 벽화도 위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불교벽화는 벽의 위치와 성격에 적합한 다양한 내용의 그림을 그려 넣어
불교의 사상과 이념을 표현하였으며, 이를 통해 중생들을 교화하고 신앙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불교벽화에 관한 기록은 불교가 전래되어 국교로 공인된 삼국시대부터 꾸준히
등장하여 다수의 예가 전하기는 하나 모두 현존하지 않고, 실제 남아있는 벽화는
대부분 조선시대 후기에 개채되거나 새로 조성된 것이다.
벽화는 건물의 일부로서 건물과 수명을 함께 하는데, 각종 전란이 빈번했던 우리
나라는 오래된 건물 자체가 드물어 고려시대의 벽화로는 부석사 조사당의 몇 점과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 모사도가 전부이며, 조선 전반기까지의 작품 또한 단 몇
점에 불과한 실정이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피해가 극심해 전 시대까지
천년 이상 면면히 이어져 불전(佛殿)을 장엄했던 화려하고 우수한 불교벽화의
전통이 상당부분 단절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대부분 단청과 함께 조성되는 관계로 단청의 일부로 치부해
큰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고, 벽체의 제작형식이나 조성방법 또한 많은 부분이
왜곡되고 간소화되었다. 특히 촉박한 제작기간과 비용에 비례하는 관행으로 인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생략되기도 하고 재료의 품질저하와 잘못된 운용 등으로
벽화의 수명이 한 세대를 넘기기 어려운 경우도 흔히 발생하고 있다.
또한 각종 불사(佛事)와 건물의 보수공사 때 인식부족으로 인해 많은 옛 벽화들이
사라지기도 한다. 사찰에 그려진 벽화는 탱화와 달리 그 특성상 고정되어있기 때문에
그리기도 어렵고 보존과 관리 또한 어렵다. 그러나 불교벽화는 미술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님과 동시에 표현 형태나 양식·소재 등은 불교사상을 밝혀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자료가 되며, 불교회화의 원류로서 소중하고 당당한 우리 미술의 한 장르이다.
현재 전통 불교벽화의 조성방법과 보존방안 연구는 절실한 실정이나, 현실은
무관심속에서 방치되다시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