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동 벽화 이야기

현승이는 강아지를 잡으러 다니느라 신나서 쿵쿵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윗집 아랫집 같이 살고 있으니 살금살금 다니자 하지만 신이 난 현승이는 입술을 쭈욱 내밀며 토라져 있네요.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현승이가 좋아하는 외할머니네로 가자고 해봅니다. 더 신이 난 현승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길 건너 외할머니네로 향합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내 얼굴도 상기되어 있네요.

엄마는 이 곳 송현동에서 30년 넘게 살아오셨습니다. 할머니가 어린 시절에 이 곳엔 바닷물도 지나가고 소나무도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전쟁 때문에 집을 잃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바다를 메꿔 땅을 만들고 소나무가 있는 산을 깎으면서 집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씩 들어서는 집들이 주인 따라 집모양도 조금씩 다르게 생기게 되었습니다.

앞마당에서 엄마가 아주까리 잎을 따고 있습니다. 작은 텃밭에 싱싱한 무와 배추 실파가 올 겨울 김장은 걱정 없다는 듯 푸른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활짝 핀 국화꽃 서광 위에 회색빛, 노란빛, 알록빛 나비가 춤을 춥니다. 현승이도 나비 잡으러 춤을 추듯 뛰어다닙니다. 앞마당 바둑이도 좋아서 낮게 나는 나비 잡으러 폴짝폴짝대네요.

“현승이가 답답해해서, 집에서 뛰기도 그렇고 그래서 엄마네 놀러왔지. 진희네 엄만 잘 계셔? 나 어릴 때 놀러 가면 밥도 챙겨 주시고 인자하게 잘 웃어주셨는데. 현승아 우리 동네 한 바퀴 돌고 오자.”

진희네는 어렸을 적 연탄 가게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지게에, 엄마는 고무대야에 연탄을 지고 이 언덕길 골목골목을 다니며 연탄을 나르셨습니다. 연탄 떼는 집이 없어지면서 장사를 그만두셨는데 요즘 다시 연탄 떼는 집이 많이 생기고 있답니다. 엄마가 다니는 미용실이랑 그 옆집도 연탄을 뗀다고 하네요. 미용실엔 날씨가 추워져서인지 벌써 다 탄 연탄이 가게 앞에 놓여있네요.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러울 때 다 탄 연탄을 깨뜨려서 길에 뿌려주면 안 미끄럽게 잘 다녔다고 현승이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올 겨울 엄마네 올라오는 길에 볼 수 있으려나?

골목 가겟집 할머니가 보입니다. 가게랑 방이랑 붙어 있는 할머니의 오랜 일터입니다. 이 오래된 가게엔 과자며 국수며 아버지 담배며 없는 게 없어서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잣집같았습니다. 오빠들 셋을 이 가게에서 다 키워 내보내시고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만 사십니다.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가게를 지키지만 떠날 수 없는 마음을 내비치십니다. 여기밖에 모르는 눈 먼 사람으로 살았다고 하시지만 오히려 그 터전을 지켜오신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빈 집들이 늘어가는데 그렇게 긴 시간을 버티어주시니 말입니다. 할머니 같은 분들이 있기에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집들에서 나는 김치찌개 끓는 냄새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젊은 사람들과 아이들이 늘어갈 것이고 그 풍경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