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글쓰기

1. 에세이 글쓰기

2014년 5월9일 김해자(시인)

1) 글이란 무엇일까요?

삶 - 말 - 글, 글은 말에서 시작되었고, 말은 삶의 절박함에서 비롯된다.

2) 글은 왜 쓸까요?

사랑이다. 미쳐서다. 죽지 못해서다.

3) 글을 어떻게 쓸까요?

마음을 뒤흔들기

4) 에세이란 무엇일까요?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생각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본 일이나 경험, 또는 의견이나 감상을 적은 글.

2. 에세이스트가 되는 12계단

1) 내 멋대로 글쓰기

“글 쓸라고 자리에 앉으면 대가리에 짐(김)부터 납니더.”

“너 글자 모르나? 지금 한 말을 고대로 글로 쓰면 되는데 뭐가 어렵노.”

글이라는 게 쉽지 않다. 말과 달리 뭔가 좀 그럴듯해야하고, 입에서 제멋대로 나오는 소리가 아닌 고상한 단어를 골라 써야 할 것 같다. 형식도 있어야 하고, 문법이라는 것도 좀 따져야 하지 않는가?

내 멋대로 쓰기. 문법도 문체도 형식도 장르도 필요 없다. “내가 쓰는 게 글이나 되겠나?” 이 생각부터 버리자. 가슴속을 꽉 메우고 있는 이야기를 입에서 터져 나오는 대로 옮겨 적으면 글이다. 글을 쓴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글을 머리에서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나만의 글쓰기를 시작하면 된다.

2) 먼저 자신을 써라

“그랑께 뭐를 쓴다요?”

“너 자신을 써라.”

삶이 글이 되지 못하고, 글이 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글은 자신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온다. 그래야 나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왜 글을 쓸까?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다. 이름을 날리기 위해서도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도 작가가 되기 위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 삶이 행복해지기 위해 글을 쓴다.

3) 조사하면 다 나온다

“조사하면 다 나와. 사실대로 써!”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뭘까? 내가 행한 그대로, 내가 생각한 그대로, 내가 가진 것 그대로, 그러니까 사실대로 쓰지 않아서다. 좀 더 멋지게 쓰고 싶어, 어디서 읽은 듯하게 쓰고 싶어, 소크라테스니 뭐니 하는 멋진 사람들의 멋진 말을 살짝 끼워 넣으려 하다 보니, 첫 줄부터 글이 막힌다.

시집에서 소설에서 또는 칼럼이나 에세이에서 멋진 말을 가져다 자신의 글에다 붙인다. 글을 멋지게 꾸민답시고 ‘날씨가 덥다’ 하면 될 것을 찜통을 끌어다 들이고 삶은 돼지의 살덩이를 섞어 표현한다.

솔직하게 쓰면 그만인데, 괜히 꾸며 쓰려다보니 어렵기만 하고, 잘 써지지도 않고, 결국 스스로 “난 글에 소질이 없어” 하고 나자빠진다.

그리 짓고, 꾸미다 보면 글쓰기가 행복이 되지 못하고, 고역이 될 거라는 것. 내 주변에 작가니 뭐니 하며 글을 쓰는 사람 중에 그러다 인생 조진 사람 여럿이 있다는 사실. 골방에만 쳐박혀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는 사람 결국 몸도 망쳤다는 것, 잊지 마시라.

4) 뻔뻔스러운 글쓰기

“이게 글이 되는지 몰라서…….”

머리를 긁적이며 공장 후배가 종이를 슬쩍 내민다.

글 잘 쓰는 방법은 따로 없다. 쓰는 것도 용기지만 쓰고 나서는 그 글을 남에게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쓰는 용기는 자신감이지만 보여주는 용기는 자신감에다가 뻔뻔스러움이 더해져야 한다. 어디 묵묵히 일만 하던 사람이 정치인도 아닌데 이 뻔뻔스럽게 글을 내놓는 일이 쉬운가. 하지만 어쩌랴. 뻔뻔해지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는데.

자신이 없을 때 나는 딸아이에게 글을 읽힌다. 킥킥거리고 웃으면 통과다. 뭔 말인지 몰라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면 실패다. 먹물이 별로 안 묻은 아이들과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할머니는 더 좋은 잣대. “무슨 말인 줄 알아?”, “재미있어?”하며 그들의 충고를 들으며 내 글을 다듬자.

5) 입으로 글쓰기

“손으로 쓸려니까 그러지.”

“글을 입으로 써봐.”

무엇을 쓸 것인지 머릿속에서 정리했다면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쓰려고 하지 말라. 입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삭이듯 다정하게 말하라. 그 말이 문장이 될지 말지 절대 고민하지 말고 그대로 적으라.

자기가 적은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소리 내어 읽다보면 잘 읽히지 않고 머뭇거리는 부분이 있다. 말이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바로 그곳을 고치면 된다. 입으로 읽을 때 술술 읽히는 글보다 좋은 글은 없다.

생활에서 늘 쓰는 말로 쓴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다. 강연은 너무 쉽고 재미있는데, 그 사람의 글을 보면 무슨 말인지 좀체 감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민중구술 예문)

6) 한 가지만 말하기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이미 자신의 마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쳤을 때다. 머리에 꽉 들어찬 생각을 풀어놓기에 정신이 없다. 막상 글로 쏟아놓다 보면 헝클어지기 마련이다. 머릿속에서는 동시에 여러 가지 그림들을 그릴 수 있다. 한 주제에 여러 장면이 클로즈업 되어 떠돈다.

-처음 글을 쓸 때는 한 꼭지에 한 가지 이야기만 하는 게 좋다.

-한 사건을 쓰되 자세하게 쓰려고 애써야 한다. ‘밥을 먹는다’로 끝날 것이 아니라 무슨 반찬이 있었고, 반찬의 맛은 어떠했고, 반찬의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꼼꼼하게 기록하자. 지금 내가 쓰는 것은 소설도 수필도 아닌 그림이라고 생각하자. 그날 내가 먹은 밥상을 내 눈앞에 다시 차려놓고 차근차근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보자. 밥상이 동그란 양은 밥상인지, 귀가 떨어진 낡은 밥상인지, 세밀화를 그리듯 꼼꼼하게 글에 담는다.

다음은 서정홍 시인의 동시집 <닳지 않는 손>에 나온 ‘여름 한낮에’라는 동시다.

농협 사거리

다리를 절뚝거리며

고양이 한 마리 천천히 지나갑니다.

쥐약을 먹었을까?

아니면 지나가던

자동차에 치였을까?

반찬 가게 할머니도

문방구 할아버지도

미장원 아주머니도

무슨 일인가 싶어 몰려들었습니다.

앞쪽에서 오던 짐차 아저씨도

뒤쪽에서 오던 택시 기사 아저씨도

고개를 쑥 내밀고 섰습니다.

사람들은

고양이 한 마리 길을 다 건널 때까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인이 길을 가다 고양이 한 마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글로 그림을 그렸다. ‘다리 다친 고양이가 찻길을 건너가고 있다’로 끝날 수 있는 짧은 순간이다. 하지만 시인은 고양이와 주위 풍경, 그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꼼꼼히 그렸다. 시인이 본 모습이 지금 내 눈앞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그 거리를 가보지도 않았는데, 그 농협 앞 사거리에 무슨 가게들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그 고양이가 지금 어떻게 걸어가고 있는지, 낯빛은 어떨지도 사진을 들여다 본 듯하다. 아무 꾸밈없이 여름 한낮의 한 풍경을 적었는데, 멋진 시가 되었다.

7) 할 말 제대로 하자

“아무리 쓸라캐도 종이 한 장 채우기 힘듭니더?”

할 말을 제대로 다 담았다면 길고 짧은 게 무슨 문젠가? 길게 썼지만 할 말을 다 담지 못했다면 부족한 글이고, 짧게 쓰더라도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담았다면 완성된 글이다.

글을 쓸 때는 글에 나를 온전하게 담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머릿속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다음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때문에 글을 쓰고 나서는 자신이 쓴 글의 부족한 점을 좀체 찾아내지 못한다. 글에서 자신이 빠져 나올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쓰고 나면 며칠 서랍 속에 묵혀두는 것이 좋다.

글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돌아보려면 나의 생각 나의 눈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내 글을 볼 때 ‘내 눈’이 아닌 나와 독립된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보통 글을 다듬으라고 하면 문장을 예쁘게 하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고친다. 문장이나 맞춤법에 신경을 쓰다보면 글에 꼭 담겨야 할 삶이나 정신의 고갱이를 놓친다. 글 다듬는 일에 첫 번째는 내가 할 말을 했는지, 했다면 또박또박 제대로 했는지를 찾는 일이다.

8) 글 얼개 짜기

당연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살려야 한다. 주절주절 끄집어 낸 여러 이야기 가운데 내가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살리고 나머지는 줄이거나 지우면 된다. 내 글에 나타난 숱한 현재와 과거 가운데 동료들에게 내 마음을 가장 솔직하게 전할 수 있는 부분이 잘 드러나도록 글을 손 봐야 한다.

살려야 할 부분에는 큰 동그라미를 치고, 글을 이끌어주는 다른 풍경과 의견들에는 세모를 친다. 세모를 친 부분 가운데 동그라미 부분을 말하는데 꼭 있지 않아도 된다면 가위표를 친다. 이렇게 구분한 다음 다시 한 번 글을 소리내어 읽는다.

내가 하고픈 말을 맨 앞으로 넣을 것인가, 글 끝에서 보여줄 것인가?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읽는 사람의 마음을 설득해가려면 뒤로 가는 게 좋고, 자신의 주장을 이치에 맞게 증명하려면 앞에 내세우는 게 좋을 듯싶다. 동그라미와 세모에 숫자를 적어 글 쓰는 순서를 잡으면 된다.

처음 쓰는 글이라면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좋다. 현재에서 과거로 갔다가 미래를 이야기 하다 다시 현재를 쓰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9) 재밌게 글쓰기

“이야기는 재밌게 하면서 글은 왜 그리 무거워?”

왜 재미가 없을까? 글에 권위와 힘이 잔뜩 들어갔기 때문이다. 아마 글을 쓰면서도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솔직해야 한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준다는 말이다. 때론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보여줄 줄 알아야 한다.

알고 보면 삶의 재미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내 일상의 사소한 일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눈이 중요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소중하게 볼 줄 아는 눈. 그 눈을 가질 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 자신의 일과 주위의 사람과 꽃과 풀과 돌멩이를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자. 그곳에 재미가 있고, 그곳에 진실이 있고, 그곳에 철학이 있다. 재미있게 쓸 이야기는 늘 자신의 주변에 널려 있다.

재미란 꼭 웃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웃겨서 웃음을 줄 수도 있지만 눈물겨운데 웃을 수밖에 없는 일도 있다. 화를 내야 하는 데도 웃음으로 끌고 갈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에 설움을 털어 놓아 행복해지고, 읽는 사람은 그 설움을 나누며 기쁨을 찾는다.

서울에서는 시내버스를 운전하기 위해 적어도 네 가지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첫째는 눈이 좋아야 하고, 둘째는 달리기 실력이 있어야 하고, 셋째는 눈치가 빨라야 하고, 넷째는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벌한 시내버스 회사에서 운전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우선 눈이 좋아야 멀리 숨어서 단속하는 경찰관을 발견할 수 있다. 눈이 나쁘면 일 년에 몇 번씩 정지 먹는 딱지를 뗄 수밖에 없다.

달리기 실력이란 속된 말로 ‘조진다’고 한다. 운전하면서 옆 차 백미러와 내 차 백미러 사이에 두꺼운 도화지 한 장 끼우면 딱 맞을 정도로 사이를 두고 70킬로미터로 조질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종점에 들어가서 오줌 눌 시간을 벌 수 있다.

또 아무리 눈이 좋고 잘 조진다 해도 눈치가 없으면 정류장을 통과할 수 없다. 저 손님이 내 차를 탈 ‘말뚝 손님’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고 술에 취한 사람인지도 판단해야 한다. 정류장을 통과해야 밥 먹는 시간 5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지독하게 참을성이 없으면 끝없이 싸우자고 덤비는 옆 차 기사들과 또 손님들과 하루종일 대가리 터지도록 싸울 수밖에 없다. (안건모, ‘시내버스 알고나 탑시다’ 가운데서,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보리)

이 정확함과 재미가 어디서 나왔을까? 이 글은 버스기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내용이다. 이 일 빨리 때려 치고 딴 일 해야지, 하며 자신의 삶을 비관하며 외면하려 했다면 쓸 수 없다.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눈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는 글이다.

글을 재밌게 쓰는 비법은 자신의 삶을 사랑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질 때 가능하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삶, 바로 사소하다고 여긴, 누구나 다 안다고 여긴, 그곳에 글을 살려주는 재미가 있다

10) 수다 떨며 글쓰기

어찌해야 글이 세상과 소통을 할까?

세상과 소통하는 글은 결코 홀로 써지지 않는다. 내 생각과 삶이 이웃과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남의 생각을 자기 생각처럼 옮겨 적어서는 안 된다.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내 것이 되지 않을 때는 ‘표절’이다. 소설가가 옆에 있으면 절대 재밌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 한다. 소설가가 ‘구라’만 푸는 것이 아니다. 늘 귀가 쫑긋 열려있다. 열린 눈, 열린 귀, 열린 마음이 있을 때, 글이 생명력을 갖추게 되고, 세상과 소통한다.

작가라 불리는 글쟁이들을 나무랄 때 골방에 처박혀 써낸 책상물림의 글이라 한다. 이건 글쟁이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글을 쓸 때는 골방에 처박혀 ‘글감옥’을 만들고 글을 쓸는지 모르지만 글을 쓰기 전까지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을 한다. 세상의 아주 사소한 것조차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소통한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 풀, 꽃, 하찮게 구르는 돌멩이하고도 소통한다.

아래는 안도현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는 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참교육을 외치다 해고되어 호주머니에 동전조차 몇 닢 없던 아픔의 시절이 이런 시를 쓰게 했다. 숱하게 발로 차인 이들과 대화를 하였고 스스로도 숱하게 누군가에게 발로 차였기에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생각에 연탄재를 몇 백 장 몇 천 장을 가둬둔다고 이런 시가 나오는 건 아니다.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절창이다.

그날 밤 술에 취해 휘청휘청 골목길을 걷다가 발에 걸리는 연탄재를 발로 차려는 순간, 연탄재가 시인에게 말했을 것이다.

글을 쓰려거든 소통하라. 소통의 첫 걸음은 내 이웃과 수다 떨기다. 생각나누기다.

11) 세상을 읽으며 글쓰기

골고루 다 보는 것이다.

나쁜 신문 안 보기 운동도 하고 그런다. 나와 다른 목소리도 늘 귀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한 것을 진실이라 여기며 믿으려고 한다. 신문보기. 글을 쓰려면 꼭 해야 될 일이다. 여유가 된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꼭 읽기를 바란다. 다행히 한국어판으로 읽을 수 있다. 지금껏 내게 익숙했던 시각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될 수 있으면 꼭 돈을 내고 언론 기사를 보았으면 한다. 삶과 세상을 가꾸는 글을 쓰는 사람의 예의이자 의무 사항이다.

12) 거침없이 토해내기

글 쓰는 일이 힘든 까닭은 주저하기 때문이다. 시작하는 것도 주저하지만 쓰면서도 주저한다. 이렇게 써야 하는가, 글에 이런 말을 옮겨도 되는가, 좀 문학적인 표현은 없을까, 이리 쓰면 내 품위가 떨어지는 거 아니야, 고상하게 바꿔야 되는 거 아닌가 ……. 한 문장 한 문장 옮길 때마다 내 손을 붙잡는 게 너무도 많다. 걱정 마시라. 글은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갈 때 맛이 있는 법.

월간 <작은책>에 실린 “이 시대 정규직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살아가는 이야기다. 손보지 않고 그대로 옮긴다.

오늘도 학원을 제꼈다.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학원을 어제도 못 가고 오늘도 못 갔다. 이제 겨우 화요일인데 월요일부터 몸이 천근만근이다. 하기사 고등학교 때부터 공장을 댕겼으니 올해로 21년짼데 몸이 여태껏 버티는 것만으로 다행이지 싶다.

나는 평발이다. 선천적인 결함(?)을 어쩌랴마는 내가 다니는 회사는 하루 8시간을 꼬박 서서 일한다. 원래는 앉아서 하던 일을 10년 전부터 서서 일하게끔 작업 환경을 바꾸었다. 서서 일하는 것이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몸에 좋다는 명분을 내걸고 작업 현장은 순식간에 바뀌었고 여태 서서 일하고 있다. 거의 손만 움직이는 일을 서서, 그것도 8시간을 꼬박 서 있으면 퇴근길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고 정신이 멍하다. 평발은 더더욱 서 있기가 힘들지만 만삭인 임산부도 서서 일하는데 평발이 무슨 대수라고.

10여 년을 서 있어도 다른 건 이골이 날 만도 하지만 서 있는 건 여전히 힘들고 되다. 아침부터 뻐근한 다리는 퇴근길에는 완전히 뻣뻣하고 묵직하니 뒷꿈치가 아리고 이건 내 살점이 아닌 것 같다. 통증이 특히 심한 날은 일하면서 내내 “니기미 씨벌~, 참말로 묵고살기 힘드네” 이 말이 절로 나온다. 옆에서 일하는 미자한테 에이 좆같은 세상! 맞제? 이 말 한마디 하며 서로 씩 웃고 만다.

8시간 서 있기도 힘든데 무슨 학원이냐고?

회사가 구조조정을 시작한 지 3년째이다. 한때는 4천여 명이던 직원이 올해까지 3번의 명퇴로 500여 명 정도 축소되었다. 그래서 먼 훗날 밥법이할 대안으로 내 적성에 맞는 학원을 다니고 있다. 말이 명퇴지 정리해고나 다름없다. 나같이 찍힌 년(?)은 항상 정리 대상이지만 아직까지 독하게 잘 버티고 있다.

서서 일하는 것도 징글징글하고 마음 기댈 벗들도 다 현장을 떠났는데 이번에도 계장과 과장의 협박에 더 오기가 생겨 독하게 버텼다. 가장 큰 이유는 딱히 지금 나가서 밥벌이할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까. 지금도 실업자들이 수두룩한데 나가서 어쩌라고.(나쁜 놈들 ! 담에 또 건드리면 캭 물어뿔끼다.) 그러나 그 대안이 생길 때 난 사직서를 쓸 수 있을까? 많이 망설여질것 같다.

예전처럼 공장에서 한줄기 희망을 보겠다는 확실한 신념이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너무나 지긋지긋하고 치 떨리는 공장이지만 내 청춘이 녹아 있고 평생을 함께 할 벗들을 만나게 해 준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굳이 명분을 붙이자면 요즘 대학을 나와도 정규직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이 시대에 한 달에 80만 원도 안 되는 돈 때문에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을 볼 때면 차마 내 자리 박차고 나가는 것이 죄(?)짓는 듯한 기분이 든다.

또 70이 넘은 나이에도 열 손가락 마디마디 관절이 툭툭 불거진 손으로 농사를 짓는 엄마를 생각하면 내가 여기서 버텨야지 엄마한테 매달 10만 원씩 용돈이라도 드릴 수 있지. 그래서 오늘도 독하게 버팅기기를 한다.

우리 회사는 이른바 승급제(인센티브제)가 있다. 근데 기준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나같이 찍힌 사람은 승급을 잘 시켜주지 않는다. 18년차인데 겨우 세금 떼고 110만 원 조금 넘으니까. 그나마 보너스가 있으니까 먹고산다. 그래도 비정규직보다는 나으니까 하며 쓴웃음 지으며 위안을 삼는다.

수출 자유 지역에서 가장 큰 회사이고 흑자도 많이 났지만 IMF 이후 몇 차례의 임금 동결에다가 이젠 명퇴까지. 오늘도 김 계장은 말한다. 회사가 어렵고 생산성을 더 높여야 우리가 산다고. 그리고 우리 회사만큼 이리 괜찮은 작업 환경이 잘 없다고 . 다른 데는 정말 힘들다고.

맞습니다, 맞고요. 앞에 일하는 영숙 언니도 한마디한다. 안 짤리고 계속 다닐 수만 있어도 좋겠다고. 그래, 언냐, 안 짤리는 것만 해도 오데고! 맞다. 맞어.(영숙 언니는 어깨가 아파서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18년차에 110여만 원 월급에 하루에 8시간을 꼬박 서 있어도 안 짤리는 기 오데고. 그라고 내 친구 현성이처럼 일하다 손가락이 잘릴 만큼 위험한 작업 환경은 아니니까. 다행이제.

하루 종일 몸에 밴 납 냄새에 두 다리는 퉁퉁 붓고 아프고, 뒷꿈치는 아리고 이제 화요일인데 아직 3일을 더 버텨야 되는데.

그래, 직장이 있는 것만으로 오데고. 그런데 니기미 씨벌~, 묵고사는기 와 이렇노!

박미경 씨의 글에서는 ‘고상’이라는 단어는 눈곱을 떼고 찾아봐도 없다. 그야말로 거침없다. 욕도 사투리도, 속마음까지 거침없이 내뱉는다. 하지만 읽는데 거치적거리기는커녕 재밌고 속이 후련하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가슴에 찌릿한 감동도 주고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도 있다. 짧은 글 한편을 읽고도 글쓴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성격은 어떤지, 생각은 어떤지, 고민거리는 무엇인지가 고스란히 느껴지지 않는가.

일하는 사람의 글은 고상함에 있는 게 아니다. 이처럼 주저하지 말고 거침없이 쓸 때 제대로 된 글이다. 이제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토해내자.3.

*글쓰는 자에게 드리는 마지막이자 필수 처방전

1) 문장 짧고 알기 쉽게 쓰기

-왜 길게 쓸까요?: 내가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내가 쓰려는 게 뭔지 몰라서. 멋지게 쓰고 싶어서

-길어진다 싶으면 멈춰요!

-고, -며 …… 잇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과감히 마침표.

-독자도 알거든요!

술 취한 아버지나 걱정많은 선생님이 되지 마세요.

* 정확하게 모르거나 대충 알 듯한 말은 사전을 찾아보세요.

* 같은 단어가 많으면 바꾸세요.

* 한편, 또 한편, 그러나, 그리고, 그러므로, 생각을 말하자면, 예를 들면, 잘은 모르지만, 중언하자면 ===> 없어도 글이 됩니다.

2) 좋은 글 베껴 쓰기

* 내가 쓰고 싶은 글감을 메모해봅시다

*한 번 써봅시다. 쓰면서 중얼중얼해봅시다.

*** 참고- 어떤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가

이런 이야기는 피합시다

*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야기

* 왜 이 이야기를 썼는지 잘 알 수 없는 이야기

* 너무 흔히 있는 이야기

* 너무 복잡해서 설명이 한참 필요한 이야기

* 자신에게나 읽는 이에게도 별로 의미가 없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을 찾아봅시다.

* 읽고 나면 슬픔이 남는 이야기

* 아, 그렇군! 하고 새로 깨달은 것이 들어있는 이야기

* 화가 나는 것을 참다 참다가 쏟아놓은 이야기

* 재미있거나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야기

*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한 눈빛이 담겨있는 이야기

* 진실한 마음, 깨끗한 마음이 담겨 있는 이야기

* 별로 특별한 이야기들은 아니지요. 다만 남보다 더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거나, 참 그렇지 하고 깨달은 것, 참다 참다 그래도 참을 수 없는 말을 토해낸 것, 새로움을 발견한 것, 재미있게 느낀 것들이 글감이 됩니다. 고상한 것 교양있다고 생각한 것 지식인의 문어체에 가까운 것들은 의외로 글이 잘 안 됩니다. 재미도 없구요. 또한 주의할 것은 개념어보다 형상어를 많이 써야 실감이 납니다. 민중적 서사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 우리 주변 가까이 있는 이야기.. 이미지가 선명한 이야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내 심저까지 파고들었던 이야기.. 지금 생각나는 에피소드 그리고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 혹은 생각을 떠올리고 바로 써봅시다.

★ 이야기를 쓸 때 유의할 점

1) 최대한 구체적이고 그때의 상황이나 심정을 그대로 지금 겪는 듯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을 이야기로 쓰세요.

2) 설명하려 들지 말고 ‘보여주기’를 해서 함께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금방 알 수 있도록 쓰세요.

3) 처음부터 너무 짧게 쓰려고 하지 말고 이야기를 충분히 펼쳐서 쓰세요.

4) 이야기 제목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고 제목과 관련하여 떠오르는 생각들, 체험들을 함께 써보세요. 제목(또는 소재)에만 너무 매달리면 쓸 게 별로 없는 것 같거든요. 제목의 옆구리를 살살 긁어서 떨어지는 것들을 다 써도 좋습니다.

2. 나도야 시인, 시를 써보자

1. 쉽게 시를 써봅시다.

시는 아름다운 언어로 된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버립시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이야기도 욕도 감추고픈 욕망도 시에서는 아름다운 감동을 줍니다.

엄마의 런닝구/ 배한권(학생)

작은 누나가 엄마보고

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

한 개 사라 한다

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

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

런닝구 구멍이 콩만하게

뚫려져 있는 줄 알았는데

대지비만하게 뚫려져 있다.

어버지는 그걸 보고

런닝구를 쭉쭉 쨌다.

엄마는

와 이카노

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

엄마는 새걸로 갈아입고

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

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

부전자전 / 이면우

일찍이 성욕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쳐들고 올라와 바지 주머니에 손 넣고 꼬집어 죽여줘야 했다

나이 쉰 되며 비로소 피가 맑아졌다 속으로 휴우, 한숨 쉬며 안도한다 이젠 여자를 무심히 볼 수 있게 된 거다 그런데

열두살 된 아이, 제 고추가 너무 자주 빳빳해져 고민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밤, 나는 꼼짝없이 한 방 꽝 맞아버렸다

아내는 십년농사 헛농사라며 방바닥을 친다 신부님 되라고, 눈 비 뚫고 업고 걸려 읍내 성당에 다녔는데 그래서야 어떻게 그 먼 길 가겠느냐며

그러더니 어느새 깔깔대며 부전자전, 하고 외치는 것이다

진철이/ 김두천

진철이가 갔단다

집 없는 진철이가 갔단다 어딘지 몰라도 갔단다

공원 맞은편 쓰레기통 옆에 허름한 텐트를 쳐놓고 살다

영영 저 세상으로 갔단다

두 겨울을 한뎃잠 자더니

마흔 갓 넘은 젊디젊은 나이에 숨을 놓았단다

여비도 없을 텐데 어떻게 갔을까

간경화에 암이 번졌는데 거기다 대고

날마다 술을 퍼붓던 진철이가 갔다

진철이가 갔는데 왜 이다지도 내 마음이 허전하고 울적할까

어저께는 우리 쪽방 사람들끼리 모여서

돈 몇 천원 몇 만원 호주머니 털어서 상을 차려 주었다

응곤이 형님, 만원만 빌려주씨요,

손에 만원을 거머쥐고 진철이 영전에 절을 하고 지폐를 놓았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잘 가소

저 세상에서는 술 먹지 말고

잘 가소

젊은이들이 자꾸 떠난다

올겨울엔 또 누가 갈까

술 한 잔 돌고 나니 눈이 발개졌다

하아, 아직도 흘릴 눈물이 남았단 말인가

*사건과 현실의 표면과 중심에서 일어나는 외면적인 시각 대신, 그 피비린내 나는 이면 혹은 심층에서 벌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 결을 따라 잘 들어가면 의외로 시를 쉽게 쓸 수 있습니다.

공사장 끝에/ 이시영

"지금 부숴버릴까"

"안돼, 오늘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안돼, 오늘밤은 오늘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 소장이 알면 ......"

"그래도 안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오는

루핑집 안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흑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그 집/ 정승철

나의 방에는 아주 작은 창문이 있다

골목길에는 수줍은 달과 같이

꼬마전구가 어두운 골목을 비추고 있다

꼬마전구의 불은 낮에 옆집 누나가 준

동화책을 비추고 있다

저 동화책 내용은

오늘 나를 어느 세계로

어줄까 기대하지만

늘도 우리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시간의 저편이라는 곳이 있다

추억이라는 녀석인데

내가 떠올리는 추억에는 전기불이 없다

나는 상상의 세계로 떠나지 못하고

이 방에서 한숨을 짓는다.

묵뫼/ 신경림

여든까지 살다 죽은 팔자 험한 요령잡이가 묻혀 있다

북도가 고향인 어린 인민군 간호군관이 누워 있고

다리 하나를 잃은 소년병이 누워있다.

등너머 장터에 물거리를 대던 나무꾼이 묻혀 있고 그의

말더듬던 처를 꼬여 새벽차를 탄 등짐장수가 묻혀 있다

청년단장이 누워 있고 그 손에 죽은 말강구가 묻혀 있다

생전에는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이들도 있다

부드득 이를 갈던 철천지원수였던 이들도 있다

지금은 서로 햐얀 이마를 맞댄 채 누워

묵뫼 위에 쑥부쟁이 비비추 수리취 말나리를 키우지만

철 따라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으면서

뜸부기 찌르레기 박새 후투새를 불러 모으고

함께 숲을 만들고 산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면서 서로 하얀 이마를 맞댄 채 누워

*시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저절로 뚫고 솟아나는 시, 이 세상이 주입시킨 이분법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으십시오

나는 너다 中 527 /황지우

한다. 시작한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온다. 온다. 온다. 온다. 소리난다.

울린다. 엎드린다. 연락한다. 포위한다. 좁힌다. 맞힌다. 맞는다. 맞힌다.

홀린다. 흐른다. 뚫린다. 넘어진다. 부러진다. 날아간다. 거꾸러진다. 페인

다. 이그러진다. 떨려나간다. 뻗는다. 벌린다. 나가떨어진다. 떤다. 찢어진

다. 갈라진다. 뽀개진다. 잘린다. 튄다. 튀어나가 붙는다. 금간다. 벌어진

다. 깨진다. 부서진다. 무너진다. 붙든다. 깔린다. 긴다.기어나간다. 붙드

린다. 손 올린다. 묶인다. 간다. 끌려간다. 아, 이제 다 가는구나. 어느 황

토 구덕에 잠들까. 눈감는다. 눈뜬다. 살아 있다. 있다.있다. 있다. 살아있

다. 산다.

그 날/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에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 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 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살기 위해 아프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아프다. 나와 내 이웃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시다. 바라보는 대상이 바로 나라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시가 나에게로 옵니다. 나는 그 나와 당신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쓰는 자에 불과합니다.

내 마음속의 땔감/ 학생

어제부터 엄마가 아팠다

오늘따라 날씨도 방도 내 마음도 추웠다

부엌에는 나무가 없다

톱 한 개를 가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는 나무가 천지였다

한꺼번에 다 가져갈 수만 있다면

머릿속으로 수없이 생각했다

내 머리 위로 새 한 마리 날아갔다

까치였다

까치는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다녔고

나는 손에 큰 나무를 들고 날랐다

머리카락을 비집고 땀이 흘렀으나

더운 것도 잠시, 땀 때문에 더 추웠다

계속 몇 개만 몇 개만 하다가

한 짐이 되었고 두 짐이 되었다

내 마음속의 땔감은 우리 짐 부엌을 꽉 채웠다

방도 내 마음도 따뜻하게 채워주었다.

2. 좋은 수필은 어떤 것인가

(살아있는 글은 자신의 육체적 체험으로부터 온다. 고통과 슬픔을 가지고 놀자 / 홈리스 글쓰기에서)

꿈의 공장/ 백효은

일을 마치고 우리 집이 있는 골목에 다다를 때 쯤이면 눈보다 귀로 먼저 아이들을 만나다. 층계에 발도 딛기 전 들려오는 내 아이들의 “까르르 깔깔깔” 웃음소리, 장난치는 소리에 왠지 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나는 7~8년 간 남편의 알코올로 인한 폭언, 폭력에 시달리다 1년 전 세 아이들과 집을 나와 흰돌회라는 시설에 살고 있다. 지금의 집은 4명이 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성냥갑만한 공간이지만 이것마저도 나에게는 감사의 조건이다. 절제의 삶을 배우는 계기도 되었다.

집을 나와 흰돌회에 오기 전 열흘간 교회 목사 댁에 머물렀다. 그분들은 같이 아파해주고 거처를 알아봐주시고 최대한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셨지만 내 집이 아닌 곳은 맘이 편할 수 없었다. 그곳에 지내면서 ‘방 한 칸이라도 있음 좋겠다. 내 공간에서 밤에 편히 잘 수만 있었음 좋겠다’하고 수도 없이 되뇌며 몇 날 며칠을 신세지며 잤던 기억이 난다.

이 모자원은 우리 네 식구에게 극적으로 마련된 공간이다. 하지만 입소 첫날,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이없는 것을 보면 순간 멍해지는 것처럼 아이들과 나는 문 앞에서 입을 떡 벌린 채 가만히 서있었다. 전에 살던 집 안방만한 곳이 새로운 집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입에선 일제히 불평의 말들이 쏟아졌고 나는 말없이 짐만 올려다 놓았다. 사람은 참 간사하다. 방 한 칸만 있으면 좋겠다던 그 마음처럼 거처가 정해졌음에도 “이럴 수가…… 이런 곳에……”라는 불평이 나오니 말이다. 이 상황까지 치닫게 한 남편을 속으로 죽이고 싶도록 원망하며 짐 정리를 했고, 피곤함과 탈진으로 쓰러져 우리 네 식구는 첫날 이렇게 잠이 들었다.

첫날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 날부터 우린 밤에 누군가의 방해 없이 밤새 잘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며 지내기로 했다. 여기 와서 둘째 날부터 정신을 차리고 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방 안엔 냉장고, 싱크대, 가스레인지, 서랍장 3개, 장롱 1짝, 욕실에는 세탁기가 구비되어 있었다. 아이들과 각자 자기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가지고 온 옷을 정하기 위해 5단짜리 서랍장의 중간 칸을 열었다. 여는 순간 맨 칸과 그 아칸이 주저앉아버렸다. “앗 깜짝이야!” 놀라기도 했지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평소 과묵한 나의 들어보지 못한 비명 소리에 놀라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기에 서랍장이 이 모양이 됐을까. 이렇게 집 나온 엄마들이 많았단 말인가……’ 여러 생각이 스쳐갔다. 이럴 때 나는 정말 단순해지고 싶다. ‘망가졌네! 고장났나보다……’ 이렇게 생각하면 끝인 것을 …… 서랍장이 그렇게 되고 나니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을 확인하기 시했다. 다른 것들은 멀쩡했다. ‘서랍장을 사야겠군’ 하고 생각했지만 아칸이 아직 멀쩡하단 이로 굳이 붙여서 2달을 더 쓰고 기했다. 사실은 돈을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보며 힘을 내야 했지만, 무너진 서랍장에 나는 또 서러워졌다. 이곳에 와서 일주일 간 나는 매일 밤마다 울었다. 이런 시설에서 아이들이 커가는 것. 이럴 수밖에 없는 내 상활. 더 해줄 수 없는 나의 경제력…… 생각나는 모든 것들이 서럽고 슬다. 그런 생각들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서로를 위로하며 매일매일 지낸 것이 지금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까지 왔다. 나름 1년을 살면서 나에게는 살림살이 노하우가 생겼다. 이제 나는 정리의 달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쌓기의 달인…… 계절에 맞춰 갖은 살림을 갖고 쌓아올리기 전쟁을 한다. 네모난 사방의 공간에 틈새도 아까울 만큼, 또 내 성격상 흐트러지는 걸 싫어하기에 온갖 머리를 굴린다. 이 머리로 뭘 해도 잘했을 텐데…… 비좁고 불편하고 누군가 1명은 앉아야만 3명이 움직일 수 있는 성냥갑처럼 생긴 나의 집이지만 하루 종일 지친 나에게 쉼을 허락하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사람은 어느 곳에서도 적응하기 마련인가 보다. 우리 네 식구는 하루하루 조그만 공에서의 삶이 익숙해졌고 자기 자리도 정해져갔다. 내 자리는 싱크대와 문 사이의 기역자 공간, 큰딸아이는 책상 공간, 둘째는 TV앞, 셋째 막내는 책꽂이 앞…… 자기 공간에 있는 때는 25평 공간에 혼자 있는 사람마냥 조용했다. 우리가 작은 공간에 적응하며 사계절을 지내는 동안 같이 생활하던 엄들이 기한이 되어 이사 가고, 빈 집에는 다른 엄들이 여러 모양의 아픔으로 들어왔다.

올해는 정말 너무 더운 여름이었다. 무더운 여름날, 냉방이 안 되는 여기에선 선풍기를 틀어놓고 문을 열어놓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2층 4가구가 있는 곳인데 각 집에서 을 열어놓고 지내다보니 시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더운 것보다는 견디기 쉬웠다. 특히, 지금은 이사 갔지만 우리 집에서 정면에 있는 집엔 바퀴벌레가 너무 많았다. 필리핀에서 온 다문화 가정이었는데 그 엄마는 쉬는 날이면 바퀴벌레와 씨름을 했다. 밤에 자고 있으면 머리 위로 지나간다니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갔다. 그런 상황에 더워서 문은 열어놓은 상태였고, 너무 심각해 그 집만 봐도 내 몸이 가려워지는 것 같았다. 더웠던 어느 날 싱크대와 문 사이의 내 공간에 멍하 앉아 있는데 그 집 문에서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우리 집으로 직진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우리 집으로 오는 바퀴벌레에서 눈을 떼지 않고 한 손으로 바닥에 있는 신발을 더듬더듬 찾아 바퀴벌레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나는 내가 그렇게 행동이 빠른 줄 몰랐다. 초자연적인 순발력으로 잡은 그 통쾌함이란…… “어딜 감히 우리 집에 들와!” 막았단 생각에 코웃음을 쳤건만 며칠 후 우리 집에 바퀴벌레가 다니기 시작했다. 아뿔싸! 큰 게 직진할 때 그 뒤에 오는 작은 놈들을 못 본 것이다. 그렇게 여름내 바퀴벌레들과 동거하게 됐다. 한 달에 몇 번씩 위에 계시는 선생들께서 소해주고 관리해주셔서 지금은 거의 없어진 바퀴벌레지만 여름내 그 집에서 나온 바퀴벌레 때문에 2층에 거주하는 3가구가 웃지 못할 일들도 많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날 큰딸은 나에게 말했다. “엄마 집 앞에 붙어 있는 ‘흰돌회’라는 명패 선생님들한테 떼어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 초등교에 흰돌회에 사는 아이들이 많아서 다른 아이들이 내가 여기 사는 거 알까봐 창피해, 빨리 이사 가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딸에게 “선생님한테 여쭤봐야 돼”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나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나님께서 우리 딸이 마음 아파하는 것을 아셨을까?

6개월 후쯤인가 하교한 우리 딸이 일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엄마! 집 앞에 ‘흰돌회’ 문패 없어졌다!” 나는 “거봐! 하나님이 우리 기도 들어주신 거야! 우리 작은 것에도 감사하자!!” 그 이후론 우리 딸은 이사 가자고 하지 않았다.

비록 바퀴벌레가 직진해서 올지라도 마음은 한없이 편하다. 나는 시간 나는 대로 짬짬이 미싱을 돌린다. 무언가 고치고 만드는 일은 즐겁다. 안 그래도 부족한 공간에 쌓아둔 것도 많아 한번 일을 할라치면 이곳저곳을 30분가량 치워야 겨우 자리를 잡아 돌릴 수 있게 되지만 이렇게라도 할 수 있음에 또 한 번 감사하게 된다. 집을 나오기 전에 학원을 다니며 배웠던 수선과 리폼을 계속해서, 여기서 독립하면 지금 남의 집에 보관중인 내 보물 1호 공업용 미싱도 꼭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남들과 똑같은 그냥 집이 아니다. 나에게 이 집은 꿈의 공장이다. 성냥갑만한 곳이지만 꿈은 얼마든지 높이 쌓을 수 있다.

나는 여기에 살면서 더 큰 꿈도 생겼다. 내가 있는 이곳은 다른 모자원보다 시설면이나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시스템이 너무나 잘 갖추어진 곳이다. 이곳에 8~10 가정밖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선 2주에 한 번씩 선생들과 예배가 있다. 예배할 때마다 나는 기도한다. 이곳이 몇몇 엄들의 안식처를 넘어서 현재 가정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는 가정들이 대기 순서 없이 이곳에 더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이 더 확보되어지기를…… 그런 마음과 동시에 이런 모자원을 하고 싶은 꿈이 생겼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그 꿈을 위해 삶을 재정비해 계획중이다.

다시 내 머릿속에 그렸던 나만의 집을 부수고 바닥을 다시 깔고 모두가 살 수 있는 공간을 짓는 중이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을 발판삼아 성냥갑만한 집이라도 이곳에서의 삶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현재 도움 받는 것처럼, 나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엄마들을 도와주고 싶은 이 꿈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집이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지만 나와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예전 집은 공기도 없는 척박한 곳이다. 숨조차 쉴 수 없다.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나는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집을 허락하고 싶다.

살면서 정말 부끄러운 건 내가 처한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만 보고 낙담하여 더 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꿈을 가질 수 있었던 자체가 나에게 큰 꿈이 이루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처한 환경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람의 생각은 곧 그 사람의 그릇이 된다고 한다. 나에겐 오늘도 어제와 동일한 하루가 지나갔다. 내일도 똑같은 생활이 반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 집은 벽돌이 하나하나 쌓이고 있다. 더 이상 삶의 무게로 무너지는 일이 없는 모두의 공간을 만들 것이다. 우리의 집, 우리의 공간에 대한 이 꿈이 바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나의 힘이다.

사진 속에 숨겨진 집 / 박용규

나는 초등학교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푹 빠졌다. 부산상고에서 야구를 할 때에는 그럭저럭 유망한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집을 싫어하고 가출을 많이 한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아버지의 재혼에 반감을 품고, 새어머니에 대한 반항을 일삼는 친구였다. 우리는 의기투합하여 집을 나가는 일을 밥 먹듯이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집을 떠나서 가출을 많이 하다 보니, 나름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기술을 터득하였다.

어느 덧 인생의 여정에서 생활의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건설회사 부도를 내면서 소유하고 있는 집을 완전히 잃고, 거리에서 잠을 자야 하는 노숙자의 처지가 되었다. 거리에서 잠을 자는 처지가 되어보니, 그 옛날 학창시절에 한겨울에 가출을 하여 친구의 집 옥상에 있는 따뜻한 굴뚝을 꼭 안고 자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집을 나와 처량한 심정으로 마음과 몸이 얼어붙었던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장사나 무역이나 사업을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금이나 은이나 다이아몬드처럼 귀한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사력을 다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총이나 칼을 사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출세를 위해 높은 지위와 명예를 지 사람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노력들은 삶의 참다운 지혜가 없으면 모두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들이다. 집을 잃고 나서야 진정으로 행복한 집은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사랑의 집이 존재하고, 희망의 집이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서로 돕고 협력하고 배려하는 자비의 집이 존재한다는 것을 노숙인이 되고서야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지난봄에 서울시와 <보현의 집>에서 주최하는 노숙인을 위한 사진 강좌를 듣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아주 유명하신 사진작가로부터 사진과 함께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되면서, 나는 나의 마음속에서 잃어버렸던 집을 찾게 되었다. 물질적으로 잃어버린 아파트는 되찾을 수 없었지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잃어버린 희망의 집과 사랑의 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나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집은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콘크리트 집을 얻기 위해서 많은 수고와 노력을 하고 살지만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콘크리트 집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희망과 사랑과 자비는 콘크리트처럼 허물어지지 않는 안전한 집이다. 사진을 통해서 나의 마음속에 숨겨진 희망과 자비의 집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서울시 자활지원과 공무원들과 <보현의 집> 사회복지사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이 분 들이 없었다면 나는 콘크리트 집을 잃은 절망 속에서 나의 마음속에 감추어져 있는 희망과 자비의 집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집을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멀쩡한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금융기관에 과도한 이자를 지출하며 하우스푸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렇게 집 때문에 물질적인 고생과 마음고생을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삶을 지탱하는 지혜는 정신적인 집과 같은 역할을 한다. 나 역시 집을 잃고 거리에서 잠을 자는 노숙인의 처지가 되고 나서야 집을 잃은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었다. 그렇지만 한 때는 다른 노숙인들을 향해서 ‘오죽 못났으면 집과 부모를 떠나서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해매이고 있겠는가’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못난 인간이라고 자책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못난 사람으로 여겼다.

집을 잃고 노숙을 하면서 생각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몸으로 행동하는 지혜는 마음속에 감추어 둔 보물과 같은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감추어진 보물이 돈으로 살 수 있는 콘크리트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집이다. 사람들 중에는 다이아몬드나 금이나 값비싼 시계와 목걸이 같은 귀중품들을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삶에서 터득한 지혜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참다운 귀중품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집을 잃고 노숙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콘크리트 집을 소유한 사람보다도 더욱 큰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체험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나는 마음 안정을 얻고 평화를 얻은 노숙인들이 부럽다. 집을 잃었지만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마음에 행복의 집을 짓고 살아가는 노숙인을 만날 때 마다 위대한 철학자를 만난 것과 같은 흥분을 느낀다.

집을 잃고 노숙을 하면서 느낀 것은 집은 없지만 음식은 제때에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몸이 건강한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한다. 그런 행복을 지켜주고,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음식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음식을 신뢰하며 맛있게 먹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음식을 만든 사람을 신뢰하고, 음식의 재료들이 생산된 장소와 생산한 사람을 신뢰하며 먹는 음식은 몸에 보약이 되고, 소중한 생명을 영위하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 이렇게 몸의 건강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몸의 건강을 지켜주는 음식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가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숙인들에게 잠잘 곳을 제공해주고, 따뜻한 정성이 들어간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 쉼터이다. 쉼터는 집을 잃고, 건강을 잃고, 마음의 안정을 잃은 노숙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값어치가 있는 집이다.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행복의 집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마음의 집이다.

집을 잃고 방황하기 전 어릴 때의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어머니는 자녀의 건강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도 희생하신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 자식을 살리기를 원하시는 인자한 사랑 베풀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식들은 삶의 지혜와 건강을 소유할 수 없다. 부모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참된 자녀의 도리를 행하는 사람이다. 집을 떠나 생활을 해보면서 느낀 것 부모와 맺은 약속은 목숨을 지켜주고, 몸의 건강과 숨겨져 있는 귀중한 보물을 발견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뜻과 의지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결같 약속을 통하여 부모는 자녀의 건강을 보호하고, 지켜주고 있다. 부모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고 약속을 지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서로의 약속에 근거한 신뢰는 확신을 주고, 어떠한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힘이 된다.

삶의 지혜를 마음속에 소유하는 사람이야 말로 일시적인 성공이 아닌,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이다. 일상의 작은 일부터 국가의 큰일까지 선택의 순간에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분별력과 통찰력을 발휘하여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 주기를 원할 것이다. 자녀가 부모의 보호로 인하여 안전 평화 신뢰하듯이, 위대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건강도 책임져 줄 것이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된 예는 없다. 오늘날 장사와 사업에 실패하고 실직하거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집을 잃고 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가고자 하는 지도자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은 많은 깨달음을 줄 것이다. 집을 잃고 거리에서 잠을 자고, 거리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과 동일한 환경에 처해보니 집을 소유하고 있을 때에는 알 수 없었던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삶의 지혜를 소유한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평함과 공정함이다.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나 검사만이 공평과 공정함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나 작은 단체의 장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 공평과 공정이다. 공평함과 공정함을 지키면서 사람들을 대하기는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어렵고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이익을 철저하게 바라지 않고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의 부와 명성과 재능을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베풀어 주는 정신이 공평한 정신이며, 공정한 정신이다. 이러한 지혜 있는 사람의 정신으로 가정은 올바로 세워지고, 이웃들은 분쟁과 다툼에서 멀어지며, 사회는 서로의 이익을 챙기기 위하여 고군분투하지 않고 이익을 우선하지 않고 어려운 사람부터 나누어 주는 정신으로 무장하게 된다.

이웃과 단체들 사이에 분쟁이 없고, 서로의 이익을 탐하지 않으며,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복지의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이며, 공평한 사회이다. 그러므로 공정함과 공평함은 인격의 중요한 덕목이 된다. 이러한 덕목을 지니지 못한 채로 겉으로 드러난 외형적인 소유물들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가 되고, 불공평한 사회가 되어 버린다.

이처럼 여러 사람을 고루 돕고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어 주는 행복은 마음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사람이 생명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가장 위대한 힘과 능력은 지혜로부터 나왔다. 지혜를 소유하는 일은 자신의 활기찬 건강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 다른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기에 더욱 필요하다.

삶의 지혜인 분별력을 증진시키는 일을 일상의 생활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일은 모든 일을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주어진 형편과 상황을 진지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지니게 되면 분별력이 향상되고, 개별적인 일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이 커진다. 작게 흩어져 있는 일들을 통합할 수 있는 힘은 아주 작은 일도 깊이 생각하는 신중함에서 나온다. 이러한 신중함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처지와 형편을 이해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관해 배려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이 길러진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의 사고와 판단을 흐리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쓸모없는 고집이다. 자신에게도 해가 되고, 타인에게도 해가 되는 고집은 사람에 대한 이해력과 분별력을 떨어뜨리고, 사려 깊게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 고집이 세면 성격이 괴팍해지고 마음의 동요가 커지게 된다.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동요를 일으키게 되면, 사려 깊게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고 분별력과 이해력을 떨어뜨린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함으로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흔히 옹고집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심술궂은 사람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다른 사람을 향한 심술궂은 고집으로 건강을 해치고, 생명을 해치는 일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이롭게 하고 건강을 지키는 건전한 고집이 아니라면, 쓸모없는 고집은 꺾을 줄 아는 사람이 지혜를 지닌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노숙인들과 쉼터라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고집과 함께 분별력을 떨어뜨리는 불성실이다.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맺은 약속을 성실하게 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성실하게 약속을 이행함으로서 신뢰를 돈독히 하고 믿을 수 있는 관계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람과 맺은 약속을 소홀히 하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언제든지 사람을 배신하고 속임수를 쓸 수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성실한 생활 태도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신함으로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배려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 버린다. 그러므로 불성실한 사람에게서 지혜로운 마음으로 깊은 배려와 분별력과 통찰력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집을 잃고 노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더욱 성실함이 필요하다. 집을 소유하고 있던 시절에는 화려한 성공을 꿈꿀 수 있고, 돈과 명성과 힘과 재능을 두루 갖춘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공하기를 원한다. 자신이 소유하고 싶은 집들과 차와 보석들을 소유할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겉으로만 드러난 화려한 성공 뒤에 감추어져 있는 소중한 보물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정신세계에 감추어진 보물은 바로 지혜이다. 지혜의 참다운 뜻과 의미를 발견한 사람은 많은 생명을 건강하게 만들고,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돈과 명예와 권력이라는 화려한 성공의 뒤에 감추어져 있는 진정한 성공인은 바로 자기 자신을 통제하고, 자신의 힘과 능력을 사회와 국가에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노숙인들이 자기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참된 집을 발견하여 다시 가정을 세우고, 사회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서로 돕고 협력하여 사랑을 행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는 희망을 품어본다.

3. 걸어다니는 책들(민중 구술, 어떻게 접근할까)

1) 주제1: 내 마음의 장소 혹은 내 마음의 고향(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림 묘사하기)

수캉 암캉이 집 앞으로 흘러. 수캉은 한탄강에서 내려와. 수캉은 마네강이라고 불렀지. 또 건너편 백의리에서 내려오는 암캉이 있어. 암캉 수캉 합쳐서 아우라지 강이라고 하대. 강 사이에 화산 바위가 병풍처럼 서 있어. 불쑥 솟은 높은 데 자그마한 토담집이 있었지. 이제는 엊그제 한 일도 잊어버리는디 희한하네. 말하다 보니까 고향집에 온 거 같네. 다 기억나네. 물소리도 들리고 말이여 꽃도 피고 샘에서 물도 퐁퐁 솟아나네. 자두나무가 빙 둘러 쳐있어. 그게 울타리지. 울타리 나서면 양쪽에 강이 내려다보이고. 강 양쪽에 서 있는 새까만 절벽에 틈사구니에 나무가 비집고 자라네. 집에서 턱 하니 내려다보면 절벽에 동백꽃, 진달래, 개살구 꽃, 철철이 피고. 봄가을 할 거 없이 산이고 들이고 먹을 게 지천으로 널렸네. 동생 둘 데리고 산이며 들이며 강 쏘다니며 배부르도록 따먹었구먼. 봄이면 산딸기, 버찌, 오디… 달작지근하지.

동생들 입에 거멓게 물이 들었구먼. 여름엔 앵두, 다래, 머루… 벌써 입안에 시큼한 맛이 도네. 산도 가을이면 거둬들일 거 천지지. 가을엔 도토리 상수리 밤 지천으로 널려 있지. 보리수 팥배나무 열매도 원 없이 따먹었네. 배가 부르면 우리 맘대로 꽃 이름도 지어가며 놀았어. 강가에 가면 코스모스 같이 하늘거리는 게 꼭 기생 같이 예뻐. 나중에 알고 보니 기생꽃이라드만. 산에 가면 똑 밥풀 씹다 뱉어 놓은 것처럼 생긴 꽃이 있어. 밥풀 같다. 밥풀 꽃이다 했드만 이름이 진짜 밥풀 꽃이래. 남색 빛이 나는 초롱꽃, 분홍색에 꽃 모양이 딱 쇠불알처럼 생긴 쇠불알꽃….

기묘년 생인디 나가, 쩌어그 섬에서 났어라우. 그러니께 나가 나이가 일흔 둘인가 서인가? 자꾸 작년 나이가 생각나부네요이. 훼메, 언제 이렇게 먹어부렀으까잉? 하여지간에 나가 쩌어그 섬에서 났어. 지도에도 잘 안 나오는 디여. 쩌어그 남도 끝트머리가 나으 고향이랑께. 목포에서도 한 시간 더 배타고 들어가야 나와. 하의 장산 비금 도초 섬이 쪼르르 있는디, 거그 ‘도초’라는 데가 바로 나으 고향이여. 이 섬이 인자는 관광지가 되부렀어요. 홍도와 목포 중간쯤에 있다고 보믄 될 것이오. 섬이라고 해도 눈을 딱 들고보믄 논밭이 쫘악 펼쳐져부러. 섬이라고 바다만 있는 중 알제? 아니여, 배에서 내려서 잊어불고 산등성이 몇 개 넘어야 포도시 옹기종기 사람 사는 마을이 나온당께. 산도 있고 밭도 있고 지름진 논도 있고, 목화도 심고 벼도 심고, 시한에도 바닷바람 먹고 시금치가 퍼러니 잘도 자라고 고 옆이서 봄똥도 퍼런 치맛자락 다 펼치고 있응께, 눈이 폭폭 쌓여도 그거이 아주 치마는 퍼렇고 저고리 들추믄 속이 박속 같이 허옇고 노랗고 아주 보기 좋지라우. 갯가에 가믄 게도 발발발 기어다니고 고둥도 줍고 낙지도 구멍 파면 나오고 쌀이 좀 귀해서 그렇지 먹을 거는 땅이랑 바다랑 다 나눠줍디다. 나가 4남 5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는디, 위에 형님이 일찍 죽어부렀어. 아부지는 11살에 돌아가시고. 그랑께 말하자믄 내가 가장인 폭이제. 11살 때부텀 가장노릇을 톡톡히 했응께.

우리 자랄 땐 유독 거지들이 들끓었소. 우리 어릴 땐 거지도 다 손님 대접해서 보내지라우. 거시기, 그냥 밥 한 술 퍼주는 게 아니고라우, 마루에다 고실고실한 밥이랑 반찬이랑 국이랑 떡 하니 차려서 손님 대접했다니께요. 오갈 데 없는 거지한티 밥 해 먹이고 잠 재워 보내는디. 그것이 뭐시냐 사람의 도리라고 합디다. 우리 동네선 머슴한티도 상전 대접했어라우. 도시 나와서 식모 살던 일꾼들 보고 나가 놀래부렀어요. 식모가 거 뭐시냐 여자 일꾼 아니것소? 일꾼과 식모 이거시 천양지차등만. '식모살이'랑 '머슴 대접'이 하늘과 땅 차이드랑께. 일제시대도 거그서 겪고 전쟁도 거그서 겼었지라우. 거 말시, 나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이 하나 있는디 말이라우, 나가 사는 디서는 거 동족상잔인가 뭐신가 하는 거이 없었당께요. 진짜여라우. 나가 어른들한티 들은 바도 있고 내가 본 것도 있응께. 이건 뭐시냐 진짜 증언인 폭인디, 나가 12살 때 전쟁이 터졌는디, 막 서로 좌다 우다 갈라져 서로 밀고하고 죽이고 했다 안 합디여? 근디 도초선 그런 일이 안 벌어졌당께요. 거 뭐이냐 동네 어르신들이 나서서 그랬답디다. 한풀이 같은 거 허지 말고 척진 것도 다 풀고 좋게 좋게 하자고, 양쪽 다 모아놓고 이러고저러고 풀어줘서 사람 하나도 안 다치고 넘어갔다 안 허요? 타향서 들어온 거지도 밥 맥여서 보내는디, 그거 사상이 머시라고 해코지하고 그랬으까?

머슴도 아제라 깍듯이 불렀소잉. 아, 그거시 뭐시냐, 그냥 작은아부지 삼촌, 부르대끼 어른으로다가 아제라 불렀지라. 어린 아그덜이 뭐를 알것소? 어른들이 그렇코롬 시킨께 그랬지라우. 나가 자랄 적엔 머슴이 무척 많았어라우. 1년에 나락 몇 가마 받고 이녁 식구처럼 일해 주는디, 명절이 되믄 이녁 식구들과 똑같이 새 옷을 해준당께. 이녁 밭에다 목화를 키워 갖고 손수 무명베를 짜 갖고 물들여서 곱게 한복을 해 입혔지라우. 귀한 명절인께 손에 뭐라도 들려서 보내서 이녁 집에 보내지, 빈 손으로 절대 안 보낸당께요. 나가 자랄 때 보던 머슴은 지금 테레비나 영화서 보대끼 거렁뱅이 같은 종이 절대 아녀어라우. 거 뭐시냐 품위도 있고 말시, 재주덜도 많았어라우. 이녁 식구와 똑 같당께요. 사랑방에 보통 머슴이 기거하는디, 그 방에 가믄 무척 재미져. 아제가 새끼도 꼬고 덕석(멍석)도 엮음시롱, 옛날 얘기를 해 주는디, 밤새는 중 몰르지라우. 그 아제들이 떠돌아댕긴 디가 많아서 아는 것도 많고 낭만적이구 또 애진간히 재능들도 많아라우. 노래도 불러감시롱 물고구마 단맛 나게 쪽쪽 빨아 감시롱 노는디 무척 재미지단 말여. 텔레비전이 있어 라디오가 있어, 그 아제 방이 막 돌아가는 활동사진이지.

도시 나온께, 이 식모란 거이 도리가 아닙디다. 천양지차드랑께요. 옛날 흑백 영화 '식모'에서 보대끼, 훼메, 아주 종처럼 부려먹어불고, 순진한 시골 처녀 꼬드겨 신세도 망쳐불고 그라드란 말시. 우리 자랄 때만 해도 말이오, 하도 없응께, 입 하나 덜려고 없는 집이 큰애기덜이 도시로 나가 식모살이 엄청 많이 했지라우. 그 당신 부잣집도 수도가 마당에 있었어라우. 시안에는 수도 녹이느라 밤새 꾸벅거림서 뜨거운 물 데펴 붓느라 잠도 잘 못 자등만. 뜨건 물도 안 나오니 찬물에 빨래하느라 손도 다 얼어 터벼불고…. 월급이나 꼬박꼬박 주간디요? 어릴 때 들어가믄, 맥여 주고 재워 주고 시집갈 적에 한 밑천 해 줄텡게, 함시롱 실컷 부려만 먹어 쌓드라고. 입성은 또 뭐시냐, 주인집 아씨들 나이 또래 옷을 물림해 입히드만. 구박구덩이여도 나가지도 못하지라우. 어디로 도망갈라고, 거 뭐시냐 이동을 하려도 이녁 수중에 돈이 있어야 가지라우.

2) 주제2: 그 사람 혹은 그리운 사람(죽은 부모도 살려내고 산 형제도 다시 봅시다)

아버지가 술 취해서 남 흘린 거 주워오고 그랬어. 시골에 오일장이 서면 옛날 아버지들은 술 취해서 다 흘리고 오고 그러쟎아? 그러면 느지막히 오시면서 남이 흘리고 간 고등어나 갈치를 주워오기도 하고 그래. 또 장날에 팔려고 쌀 싣고 가면서 몇 방울 흘리쟎아? 그것도 몇 알씩 주워오고. 아버지가 골골하셨어도 참 재밌는 분이야. 둘째오빠는 장에 내가다 길바닥에 흘린 쌀을 주워오고. 한번은 둘째오빠가 아랫도리도 없이 들어오더래. 흙조차 모래조차 범벅이 된 쌀을 어디 담아올 데가 없으니 바지를 벗은 모양이야. 고추는 가리고 집으로 막 뛰어왔대. 막내동생 죽 끓여 주라고 바지춤 속에서 쌀을 내놨대.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면서. 밥을 하면 소쿠리 하나 가득 무를 까. 솥 밑에 잔뜩 무를 깔고 쌀은 한 그릇이나 해서 아버지만 드려. 그러면 무밥을 먹겠는데 숭늉은 도저히 못 먹겠는 거야. 단 것도 아니고 들큰한 것도 아니고. 점심은 늘 고구마로 때웠어. 쑥이 나는 철엔 쑥떡으로 때우는데, 쑥은 잔뜩 넣고 쌀은 한 주먹이나 널까 말까 해서 쪄. 쑥떡을 씹다 보면 나중엔 입안에 쑥만 남아. 씹다씹다 안 씹어지니까 딱딱하게 굳은 쑥만 뱉어. 먹을 게 그 모양인데 학비가 어딨어?

50년 동안 초등학교 3학년 학력으로 살았어. 당시 육성회비가 60원인가 70원인가 했다는데 그걸 낼 돈이 없었어. 날이면 날마다 돈 가져오라고 선생님이 집으로 돌려보내. 어차피 엄마가 없어서 못 주는 거 빤히 아니까 괜히 돈 달라고 해봤자 뭐해? 엄마 가슴 아플까 봐 말도 안 했어. 학교 그만둔 지 얼마 안 돼서 고향 떠났어. 11살 때였던가. 안 보이던 오빠가 내려와서 서울 가면 책가방도 사주고 학교도 보내 준댜. 얼마나 신이 나. 친구들과 헤어지는 슬픔도 잊고 신나게 따라왔지.

배고픈 것보다 불화라는 게 더 힘들드라. 오빠랑 아버지가 사이가 별로 안 좋았어. 불화가 심했지. 모두 오빠에게 얹혀사는 신세니 눈치 보랴, 오해를 받아도 속으로 혼자 삭이느라 마음고생이 심했어. 월급을 엄마에게 주고 싶은데 오빠 밑에 얹혀사니까 큰올케에게 봉투를 그대로 내줬어. 큰올케가 또뽑기를 그만두고 나중에 구멍가게를 했는데 저녁에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가게도 봐주곤 했지. 월급을 갖다 주면 큰오빠가 일이백 원씩 줘. 그땐 은행에 저금할 줄 모르니까 일이백 원을 둘째언니네 갖다 줘서 모았어. 그 돈으로 꿈에도 소원이던 소라색 후레아치마를 사서 입었어. 근데 올케가 그래. 니가 어디서 돈이 나 옷을 사 입었냐고. 가게 돈통에서 훔쳐서 산 거 아니냐고. 그때 마음에 받은 상처는 말로 못하지. 안 훔쳤다고, 이만저만 해서 샀다고 말하고 싶은데 엄마가 들으면 속상할까 봐 속으로 삭히느라 힘들었어.

참 원없이 많이도 걸었네. 당시 버스비가 5원이었거든. 아, 그 5원 아끼려고 일찍 끝나는 밤에는 두 시간씩이나 걸어다니며 돼지저금통에 저금을 했다니까. 한 3년 동안 모은 저금통을 뜯으니 12,300원이 되는 거야. 그래 그 돈으로 셋째오빠 드라이크리닝 하는 제일모직 바지를 18,000원에 맞춰 줬어. 셋째오빠 좋아했어.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해 어릴 때부터 자랑스러웠어. 그런 오빠가 국민학교 마치고 강원도 탄광에 돈벌러 갔어. 거기서 폭탄을 맞아 3명이 죽고 1명은 다리를 잘랐대. 우리 오빠는 78바늘을 꿰매고 오른 손을 쓸 수가 없게 됐어. 자존심도 세고 남의 도움도 안 받는 성격이었는데… 반병신 되고 그 뒤로 괴로우니까 술 먹고 집에 들어오면 행패도 부리고 그랬어.

불운은 꼬리잡기를 좋아하나봐. 계속 앞 꼬리 잡고 이어지드라. 그 사이 군대 간 둘째오빤 헬리콥터 타고 가다 떨어졌어. 5명 죽고 오빠 혼자 살아남긴 했는데 후유증이 컸어.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음을 못 걷고 누워서 지냈지. “그러니 소꼬리 사주고 쌀말이나 팔아 주고 싶지. 가정이 어려우니 조카들 바지나 티샤쓰라도 사주고 싶고… 어렵기는 큰언니네도 마찬가지였어. 아직 어린 조카 다섯을 남기고 형부가 뇌졸증으로 쓰러졌네. 형부는 노름빚에 뭐에 방 한 칸 안 남기고 세상을 떴어. 무허가촌에 집을 지어 우리랑 지하실방에서 같이 살게 됐지. 구청에서 때려 부수면 언제 쫓겨날지도 모를 집에서. 언니는 먹고 살려고 시금치 밭에 일 나가고 그래. 옆에서 보니 어린 조카들이 늘 불쌍해. 힘닿는 데까지 조카들 거두어 주고 싶었어. 그러다 큰오빠가 살기가 힘드니까 자기네 식구만 데리고 도망을 갔네. 마침 여름철이라 나도 일거리가 없을 땐데, 집에 당장 먹을 쌀 한 톨 없는 거야.

눈치 볼 사람 없는 게 그리 좋은 거드라. 맘 편히 밥 먹고 사는 게 세상에서 젤 좋아. 그래 어쨌든 쌀이 없잖아? 아버지랑 빙수장사를 했지. 마침 구멍가게에 빙수기계가 있어. 얼음을 외상으로 사다 노란 주스 물 붓고 하루 종일 갈았어. 180원이 남더라. 그래서 그 돈으로 보리 서 되를 샀어.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때 웃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 다음날은 요령이 생겨 쌀 두 되를 샀네. 어쨌든 그걸로 한 달을 살았어. 언니랑 나랑 엄마한테 월급 갖다 주지, 눈치 볼 사람 없지 그때 엄마가 당신 생전에 밥 한 번 편히 먹는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지가 바닷가에서 태어났어유. 충남 당진 송산면 당산리라고. 바닷가라고 해도 항구는 없어유. 갯벌만 좌악 펼쳐져 있지유. 반농반어로 생계를 이어가는 작은 마을이었어유. 아버진 농사지을 땅 한 뼘 없이 염전에서 인부 노릇을 했어유. 바닷물이 가득 차는 사리 땐 고기를 잡고, 물이 빠지면 조개도 캐서 식구들 먹고 살았어유. 줍는 게 아니여유, 조개는. 조개 하나하나 다 손으로 일일이 캐는 거이란 말여유.

염부(鹽夫)라는 거이 참 고된 일이여유. 밤이면 해주구더리에다 물을 가두었다 아침이면 염판에 물을 퍼올려 소금을 맨든다고요. 수리차로 퍼올리쥬. 수리차가 어떻게 생겼는고 하면, 아주 큰 바퀴에 계단이 있는 풍차라고 생각하믄 되유. 수리차 굴리는 게 젤 힘들지유. 하루 종일 염판으로 물을 밀어 넣는 일이니께. 참 이상스런 것은 그게 늘 제자리 걸음이란 말이어유. 수리차는 가만히 있고 사람만 종일 계단을 밟아유. 아버지 인생을 생각하면 수리차 같어유. 평생 한 길을 걷는디 제자리걸음이드만유. 나도 아부지랑 똑같지유 뭐. 그 갯물이란 것이 겁나게 무거워유. 거 2천년 전에 그 먼 나라 예수라는 멋진 사나이가 그랬다잖어유?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요. 그거이 말이 쉽지 바닷물이 소금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유?

뭐한다고 그 양반은 그렇게 어려운 걸 되라고 했으까유? 아 그랬잖아유? 예수가 소금과 빛이 되라고유. 진짜 소금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유? 정성스레 이녁 몸 움직여 수리차를 밟아야쥬. 빛의 도움도 필요하쥬. 아, 당장 앞이 아무리 안 보여도 빛을 잃지 않아야 되쥬. 사실 지는 빛도 소금도 아니쥬. 가진 게 있나, 배운 기 있나, 몸땡이가 튼튼하나… 없으니께 누구 도와줄 처지도 안 되유. 하지만 지는 말이여유, 속마음은 진짜 소금이 되고 싶어유. 그 소금이란 게 말유. 하나도 버릴 게 없어유. 바다를 그대로 속에다가 딱 품어갖고 고갱이가 되어버린 게 소금이지유. 반짝반짝 얼마나 이뻐유? 나 살기 어렵다고, 나 아프다고, 세상이 썩었다고 빛을 잃어버릴라 허면 지가 타일러유. 영철아. 니 그라믄 안 된다. 기운내자, 웃자 영철아, 그라고 다시 기운내서 걸어가보자, 영철아…그려유. 지금 지가 아파도유, 지는 오늘도 삶의 수리차를 돌리겠슈. 휘청휘청 걷다보면 저기 멀리 어디선가 소금빛이 반짝반짝 할 것이니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우리 어머니에유. 나는 잘 해봐야 나무나 만지는 목공이지만 우리 어머닌 인간 장인이쥬. 엄마 이름은 ‘아가다’유. 독실한 천주교 신자지유. 농사짓고 혼자 살아유. 우리 어머니가 사는 집은 참 기이하고도 수려하고도 기품 있게 생긴 소나무가 척허니 서 있어유. 충남 당진 장승백이 집서 혼자 사시는디, 아, 농사지을 땅 한 뼘 없지유. 도지로 두어 마지기 농사 짓고 살아유. 그래도 우리 어머닌 마음만은 누구 못지않게 부자여유. 어머니가 유난히 꽃을 좋아하쥬. 우리 어머니가 뭘 잘 안 사는 양반이유. 헌데, 꽃씨만 보면 무조건 사신다니께유. 성당 주변에도 뿌리고 길에도 뿌리고 그러지유. 꽃씨를 뿌려도 꼭 당신 집 안마당에만 뿌리지도 않아유.

“꽃이 이렇게 이쁜디, 나만 볼 수 있간디요? 길가에 심궈야 지나가는 사람도 꽃 보고 좋아할 거 아녀유?”

한 번은 크리스마스 무렵에 성당에 다녀오시던 길에 말이에유. 구세군 냄비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 500원을 냄비에 넣었대유. 그 500원이 아마 그날 당신의 차비였을꺼유. 어머니는 함께 집에 가던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시장에서 살 게 있다고 거짓말 하고는 20리 길을 걸어오신 양반이에유.

3. 어긋난 사랑이든 이루어진 사랑이든 그가 살아오면서 사랑하고 아프고 이별한 이야기는 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서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이 순간 난생처음인양 새로이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