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다음 몸이 일어난 뒤

한 열가지 생각이 줄을 서고

서너게의 공간을 지나치며

수무개는 넘는 물건들을 처다보고

물 한 잔 마시기전에 10개쯤 되는 사물이 손 끝을 스칩니다.

 

아직 하루의 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다섯 사람과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스무명쯤의 목소리를 tv에서 창밖에서 들은 것 같습니다.

 

오늘 해야 할일은 분명 어제까지는 다섯가지였는데

저녁이 오고나니 이런 저런 일들을 마주치고 빗기고 넘어지느라

한두가지는 오늘도 하지 못하고 그 중 한 가지는 내일도 모레도 이루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고요한 하루

음식도 설거지도 없는 하루

사람소리,  tv소리 없이

무서울 것 같은 바람소리 두렵지 않게 듣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 만나야 할 것들을

그에게 맡겨두어야 하기에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아파 10년 쯤 밥을 못하실 때

어머니가 밥이라도 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어머니가 밥을 하니 좋다는 말을 못했네요.

 

아버지가 스스로 밥상을 차리시고 장남 내외 맞이하시던 날

아버지가 차려주신 밥상이 고맙다는 말은 조금 하고

그동안 아버지와 살다 힘겨웠던 날들에 대해 아파하고 분노하고 사과를 구하던 날이 지나고

다시 가족이 모이고 밥 한끼 싸움없이 먹는 날이 생겨 좋다는 말을

난 언제쯤 아버지께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날들이 지나고 한끼 6000원짜리 외식은 좋은데

가끔 치뤄지는 비싼 외식은 불편함을 삼키는 날이 되곤 합니다. 

요즘은 이것을 두고도 무어라 비판하기 어려운 날들이 지나고 있습니다.

 

내겐 두려움도 미움도 분도도 가득차 있고 사랑과 웃음과 마주침의 기대도 샘솟으며, 걱정과 불안과 아픔의 숲을 지나는 하루의 시간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삶을 살아가게 하고

삶을 생각하게 하고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고

무엇인가 일을 하게 하면서

희망이라는 것을 조금씩 지워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춰진 내게 무엇을 스스로 용서할 지에 대해 물으면 자꾸만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지 모르게됩니다.

 

다행히도 그런 고민은 용서하지 못하는 이들을 용서할 수도 있다는 메모를 마음의 한 켠에 꼿아 두게 합니다.

 

다만, 활동이란 작업이란 나에게도 그에게도 우리와 관계없어 보이는 누군가에게도 스스로와 마주칠 수 있게 도와주는 거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이란 사람이야'라는 규정이 아닌

 

'나는 이런 사람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서로가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

 

부모님과 함께 살아있는 동안 매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그렇게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은

 

하루에 마주친 수많은 일들 때문이라고 변명한 뒤 그래도 전화는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군요.

 

희망은 그런 후에 생길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언제고 우리의 아이들과도 그런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