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뎌지는 논문 표절] 논문조작 걸려도 무사… “교수가 연구결과 다른 사람에게 줘라”

연구논문 표절 조장하는 대학 실태

 

 

 

“표절은 학자에게 치명적인 오명이 됩니다. 표절은 의식적으로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납니다. 표절 유혹은 게으름과 안일함에서 시작됩니다. 표절을 알고 할 때에는 자신에게 관대하고 유리한 변명이 충분히 만들어집니다. 표절하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합니다. (중략) 발표된 후에 표절로 밝혀지면, 감당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한국교육학회 뉴스레터 260호)

오욱환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가 2009년 쓴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이 글은 연구윤리 강의에서 빠지지 않는 ‘명문’으로 꼽힌다. 이 글에서 오 교수는 학자적 양심과 논문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최근 이 글이 다시 인터넷을 중심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고위공직자와 사회 유명 인사들의 잇따른 논문 표절이 사회적 관심을 모으면서부터다.

이원용 연세대 교수는 “초·중·고에서 남의 숙제 베껴 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문화, 대학 리포트를 불법 다운로드받아서 저작권을 위반하는 데 둔감한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 결국 논문 표절 문제”라며 “표절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상세한 교육이 필요한데, 이는 한두 시간 교육해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표절하면 걸린다’라는 인식이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영어권의 경우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 검색하면 쉽게 걸러낼 수 있지만, 한국어 데이터베이스는 일부 인터넷 중심 프로그램만 있고 오히려 악용 수단으로 쓰인다. 한 사립대 교수는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논문을 내면 무방비”라며 “일부 학생들은 표절 뒤에 검색 프로그램을 돌려서 걸리는 단어만 교묘하게 바꾸는 식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고 밝혔다.

학문적 가치가 없는 ‘쓰레기 논문’이 학위 논문으로 용인되는 기형적인 사회구조도 원인이다. 해외의 경우, 논문 표절이나 조작은 심사 과정에서 걸러짐은 물론 검증을 못했다 하더라도 후속 연구자가 논문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하지만 한국은 청문과정 등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찾아보지도 않고, 버려지는 논문이 대부분이다. 모 대학 행정대학원의 교수는 “석사 학위든 박사 학위든 직장인들은 대부분 자기 직장생활 경험을 주제로 해 학문적 가치보다는 특화된 논문을 내는데, 학자들과 동등한 수준을 요구할 수도 없어 대부분 용인하게 된다”고 밝혔다.

연구재단 관계자는 “학문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학위자의 대부분은 논문을 내고, 책으로 만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에서 논문 가치를 찾는다”면서 “이 같은 논문을 용인하고 학위를 주는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폐쇄적인 대학 연구실 문화도 연구윤리 의식 부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각 학교 게시판 등에는 “교수가 낸 논문이 표절인 걸 알았다”거나 “연구 결과를 다른 사람한테 교수가 주라고 했다”는 고민글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댓글 대부분은 “가만 있는 게 상책”이라거나 “교수한테 찍히면 앞길이 막힌다”라는 식이다.

논문 표절 등 연구윤리에 대한 대학들의 과도한 관용은 학문 분야에 몸담고 있는 학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2008년 10편이 넘는 논문을 조작해 문제가 됐던 성균관대 김모 교수는 여전히 학교에 있고, 학계에서 숱하게 터져 나오는 논문조작이나 표절 문제 등의 후속조치는 대부분 유야무야된다. 한 대학 교무처장은 “교수들이 ‘재수 없어서 걸렸다’는 동정론이 힘을 받곤 한다”면서 “교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데, 어떻게 직장인 학생이나 고위공직자들에게 연구윤리를 강조할 수 있겠냐”고 되물었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학계에 몸담을 제자와 간판을 따러 온 제자를 별개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서울 모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직장인 정모 씨는 “교수들이 직장인 학생은 수익원으로 생각한다”면서 “논문 심사교수를 초청하는 데 돈을 내고, 밥을 사고, 학위를 받으면 사은회 하는 걸 대놓고 강요한다”고 말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