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함께 써요 “뭐 이런 집이 다 있노?”부산 대연동에 협동조합 방식으로 공동주택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하여 ‘일오집’. 14가구가 모여 살며 한 채의 공동 공간을 꾸려갈 예정이다. 집에 저당 잡힌 삶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다.
김은남 기자  |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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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호] 승인 2013.04.02  02: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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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 부산 대연동 발도르프학교. 아이들이 하교한 빈 교실에 막 퇴근한 엄마·아빠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탁자 위에 놓인 설계도면을 하나씩 들고 들여다보기 바빴다. 힐끗 곁눈질해 보니 모눈종이에 어지럽게 그려진 평면도 위로 ‘우수드레인 설치’ ‘캔틸레버 설치’ 따위 글씨가 쓰여 있다. 건축에 문외한인 기자에게는 외계어나 다름없다.

그때 등장한 한 여성. 설계사무소 DOCA의 이재원 소장이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이 소장은 모여 앉은 이들에게 곧장 본론을 꺼냈다. “승혁이네는 꼭 욕조를 두 개 놔야겠어요? 욕실이 좁은데.” 그러자 승혁이 엄마 안소희씨(42)가 말한다. “남편이 목욕에 목숨을 걸어요. 집이랑 맞바꾸는 한이 있어도 냉탕·온탕은 양보 못한대요.” “정 그렇다면 욕조를 매립형으로 해서 공간을 줄여보죠.” 다음은 현서네. 질문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화장실 바닥은 꼭 타일로 해야 하나요?” “우리는 부부 침실과 아이 방 위치를 바꾸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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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5월 입주할 협동조합형 공동주택 ‘일오집’ 앞에 안소희씨가 건축 모형을 들고 서 있다.

이들은 지금 협동조합 방식으로 공동주택을 짓는 중이다. 오는 5월이면 입주할 집 마감 공사를 앞두고 이날도 입주민 회의, 아니 조합원 회의가 열린 것이다. 공동주택 이름은 ‘일오집’. ‘14+1’에서 따왔다. 14가구가 모여 살면서 1채의 공동 공간을 함께 꾸려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학교에서 도보로 3분쯤 떨어진 거리. 이들이 짓고 있다는 집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922㎡(280평) 대지 위에 4층짜리 건물 두 채를 짓고 있었다. 얼핏 평범한 빌라처럼도 보이는데, ㄷ자형으로 배치된 건물 가운데 330㎡(100평) 가까이 넓은 공간이 비어 있는 게 색다르다. 주차장일까? 아니다. 아이들이 뛰놀게 될 마당이란다. “용적률을 대폭 양보하더라도 마당 넓은 집을 짓고 싶다는 데 조합원 모두 이견이 없었다”라고 안소희씨는 말한다.

이 집의 특징은 또 있다. 건물 두 채에 들어설 열네 집의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 그것이다. 실면적 기준으로 46㎡(14평)에서 106㎡(32평)에 이르기까지 규모부터 제각각이다. 중대형 아파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좁게 느껴질 수 있는 평수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 공간(집)을 조금 좁게 쓰는 대신 1층에 배치할 공동 공간(커뮤니티실, 창고 등)은 넓게 쓰자는 것이 이들의 기본 구상이기 때문이다. 대신 개인 공간은 한껏 개성을 살렸다. 복층 구조를 갖춘 집이 있는가 하면 하늘로 뚫린 창(천창)을 낸 집, 테라스를 거실과 부엌 사이에 둔 집 등 구조와 설계가 제각각이다. 그러다보니 산전수전 온갖 공사를 다 겪어봤다는 인부들 입에서조차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뭐 이런 집이 다 있노?”

이들이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3년 전인 2011년 봄이었다. 대안학교 학부모로 처음 만난 이들은 “더 늦기 전에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보자”라는 데 공감했다. 배한철씨(43)는 “아파트 사는 1년 동안 아이한테 가장 많이 한 말이 ‘뛰지 말라’였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게 싫어 연립주택으로 이사했더니 이번에는 또 너무 낡은 구조가 문제였다. 다른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 결론은 단순했다. ‘노후에 그림 같은 전원주택 짓고 살면 뭐 하나. 아이들이 커가는 지금 이 순간 마음껏 뛰어놀아도 되는 집, 안전하고 쾌적한 집을 짓자.’

협동조합 형태라 대출 어려워


문제는 역시나 돈이었다. 이 때문에 집을 짓고 싶되 돈이 넉넉지 않은 개인들은 도심에서 떨어진 교외로 나가는 편법을 쓴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몸담은 학교와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면 해결책은 하나. 여럿이 힘을 합해야 했다. 이들에게는 낯선 일도 아니었다. 이미 협동의 힘으로 대안학교를 세워본 적이 있는 이들이다. 교사 초빙하는 일도, 건물 짓는 일도 십시일반으로 해결한 바 있다. 안소희씨는 말한다. “협동조합으로 집을 짓는다면 남들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우린 잘 모르겠다. 혼자 하기 힘들면 여럿이 힘을 합치는 게 당연히 더 쉬운 방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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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일오집 14가구는 설계와 디자인이 모두 다르다.

돈 말고 더 중요한 이유도 있었다. 딸 민채(8)와 아들 민준(5)을 둔 김진희씨(39)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형제자매가 있었으면 했다”라고 말했다. 14가구가 함께 살면 이모·삼촌도 넘쳐날 터였다. 이들이 모델로 삼은 서울 마포구 성미산마을의 공동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가 그랬다. 너나없이 아이를 돌보며 즐겁게 어울렸다(‘열린 집’ 소행주의 성공 비결 기사 참조).

그러나 꿈을 실행으로 옮기기에는 난제가 첩첩이 쌓여 있었다. 말이 나온 그해(2011년) 겨울, 일단 출자금으로 10억원을 모아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놀고 있던 땅을 사들인 것까지는 좋았다. 수십 년간 버려져 있던 땅은 손볼 데투성이였다. 무단점유자도 살고 있었다.

간신히 이들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다음은 건축비 마련이 큰일이었다.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들은 ‘잔금 치를 때까지 필요한 돈은 은행에서 빌리면 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대안학교를 세울 때 땅과 사업을 담보로 이른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을 쉽게 받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병이 생겼다.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면서 돈줄이 꽁꽁 묶인 것이다. “우린 이미 땅도 샀고 분양도 끝났다”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은행은 건축주가 여럿인 협동조합 형태를 오히려 불안해했다. 결국 시공사 사장 명의로 17억원을 대출받고 조합원이 연대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일을 해결했다. 하마터면 꿈이 깨질 뻔한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는 협동조합 형태로 주택을 지을 때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라고 주택건설협동조합포럼을 운영 중인 기노채 (주)아틀리에 대표는 말한다. 이미 주택협동조합이 일반화된 외국과 달리 국내에는 이제 막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만큼 법·제도상 허점이 많다. 이를테면 협동조합 이름으로 땅이나 주택을 사려면 개인에 비해 2~3배 높은 취득세·등록세를 내야 한다. 협동조합을 일반 법인처럼 취급하기 때문이다. 은행 융자도 쉽지 않다. 일오집 사람들 또한 이 때문에 처음에는 협동조합이 집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형태를 꿈꿨다가 결국 집은 개인별로 소유하고 협동조합은 집을 시공·분양하는 코디네이터 구실을 하는 것으로 역할을 정리했다. 지난해 6월 정식 결성한 협동조합 이름은 ‘디자인더대연’이다.

침체된 부동산 경기, 그럼에도 서민에게는 너무 높은 대도시의 땅값 또한 주택협동조합의 발목을 잡는다. 일오집의 경우 땅값·건축비 포함해 가구당 들인 돈이 3.3㎡(평)당 640만원 정도다. 서울에 비하면 반값 수준이라지만 인근 아파트 시세에 비해 크게 싸지는 않다. 기노채 대표는 “정부나 지자체가 소유한 토지를 주택협동조합에 임대하는 방식 등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유럽 또한 산업화와 2차 대전을 거치며 열악해진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협동조합을 적극 활용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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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조합원들이 설계도면을 보며 막바지 점검회의를 하고 있다.

주거 문제 때문이라면 임대주택 등을 더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그런 식의 접근 방법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라고 기 대표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기존 공공주택은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지어져 왔다. 뉴타운이건 임대주택이건 마찬가지였다. 마을과 이웃이 사라진 자리, 건설사가 분양한 주택에 입주한 사람들은 낯선 주거지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콘크리트 벽을 맞댄 채 살아가야 했다.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협동조합은 다르다. 서로 몰랐던 사람들일지라도 집을 짓겠다고 모여 부대끼는 과정에서 ‘관계’를 만들어가게 된다. 안소희씨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속한 대연동이라는 마을 또한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정든 마을과 이웃이 있어야 진짜 좋은 집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집을 짓게 되면 건설사의 일방적 드라이브도 불가능해진다. 조합원이 원하는 설계·자재를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공급자가 아닌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집, 커뮤니티가 살아 있는 집을 만드는 일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일오집은 현재 공동주택 5채의 주인을 찾고 있다. 학교·이사 문제 등으로 일부 조합원이 이탈하면서 남은 주택이다. 안소희씨는 어쩌면 외부보다 내부에 더 큰 장벽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요즘 같은 때 집을 사다니, 그것도 연립주택을 사다니 미쳤어?” 주변 사람들의 이 한 마디에 주저앉는 이들을 너무 많이 봤다는 것이다. 집에 저당 잡혀 사는 삶을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막상 집을 재산 증식의 도구로 보는 고정관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는 이들은 앞으로 제2, 제3의 일오집을 통해 새로운 집의 비전을 제시하고 싶어 한다. 이들이 짓는 집이 궁금하다면 인터넷 카페(cafe.daum.net/15zip)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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