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우리가 잃은 것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4.10.20 20:01 / 수정 2014.10.2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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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지난 주말 모교의 행사 때문에 오랜만에 청운동을 찾았다. 행사에 들른 후 혼자 효자동 쪽으로 골목길을 걸어 내려갔다. 소년 시절 악동 친구녀석들과 뛰어다니며 장난치던 이 오래 된 골목길.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청와대를 보러 온 중국 단체관광객들의 행렬, 골목마다 서 있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 그리고 ‘서촌’이라는 이름의 관광지를 찾아 온 사람들이었다. 새로 들어 선 찻집들 사이를 무심히 걷다가 한 장의 포스터와 마주쳤다. 나무가 되어 굳어 버린 소년의 머리카락이 초록 무성한 이파리로 자라나고 있는 그림, 그리고 ‘단원고등학교 2학년 4반 18번 빈하용 전시회’라는 글씨였다. 그 글씨 때문이 아니라 그림 때문에 홀린 듯 서촌 갤러리의 좁은 계단을 올랐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작품들은 충격적이었다. 일러스트의 섬세한 필치는 알폰스 무하를, 만화적이면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떠올리게 했다. 에곤 쉴레의 자화상처럼 도전적인 시선의 인물화도 있었다. 기발한 상상력, 섬세한 묘사, 대담한 색채. 그림마다 이야기를 품고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사춘기 소년의 불안정함과 완성된 작가의 원숙함이 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갤러리에 있는 분께 빈하용 군의 그림 이력에 대해 물었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그림 그리기에 빠져서 손에 잡히는 종이마다 그림을 그려 댔다고 한다. 전시된 그림 중에는 가정통신문 뒷면에 그린 것도 있었다. 성적표 뒷면에도 그렸단다. 아무런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혼자 대부분의 작품 세계를 완성했다. 작년에서야 뒤늦게 미술 학원에 들어갔다. 올 봄엔 친구들과 함께 수학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물고기를 참 좋아했나 보다. 전시실 가득 다양한 물고기 그림이 있었다. 도시의 빌딩 숲 사이를 거대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다. 갤러리를 나왔다. 길 건너 통인시장이 보였다. 집에 있는 애들 생각이 나서 복잡한 시장통을 걸어 명물 기름 떡볶이를 한 웅큼 샀다. 그런데 등 뒤로 한 여자분이 뛰어가며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불렀다. “윤아”, “윤아”. 그러다 어느 신사분과 부딪혔나 보다. “죄송합니다, 아이를 잃어버려서요. 죄송합니다.” 그리곤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나는 내 새끼 줄 떡볶이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떠올렸다. 이 범상한 무심함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것들을 말이다.

뒤늦게 나는 시장통을 뛰어 쫓아갔다. 아이가 멀리 가지 않았길 속으로 빌었다. 서로 원조라고 주장하는 떡볶이집들을 지나고, 도시락을 든 채 반찬을 골라 담는 사람들을 지나, 시장통이 끝나는 곳에 그 여자분이 인형 같이 자그마한 여자아이를 꼭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말을 건넸다. “애를 찾으셨네요. 다행이에요.” 여자분은 환하게 웃었다. “네, 고맙습니다.”

집에 돌아가며 생각했다.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 주어야 한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인천지법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