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드라마고
작성일 : 2016년 7월 5일 0시

당신은 나입니다. 1


10년쯤 남았을까.

하루의 시간을 잃어버린 청춘의 십년쯤 되는 것처럼

일찍 일어나 일터를 향하고

지나치는 젊은 사람들의 인사를 지나치고

지금보다 10년은 젊은이처럼 대답하고

아이들 키울 때보다 몇 분지 작은 월급을 받아

외딴 산골에 땅없이도 집을 지울 수 있다는 꿈을 꾸는

당신은 나입니다.


연탄불 갈고 곤로에 냄비밥 앉히고

주머니마다 뒤져 모은 돈으로

새벽 가게에서 두부와 콩나물을 사오면

별말 없이 세수하고 옷 입고

입맛에 맡는 반찬이 없는 지 국물에 밥말아 먹은 남편이 나가고 나면

아이들 하나씩 세수 시키고 옷 입히고

도시락과 가방을 챙기고 나면

일주일에 한두 번 학용품돈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아침부터 숟가락 소리 나는 옆집의 문을 두드리던

당신은 나입니다.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본래 정해진 것일까.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왜 안 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했던 여고시절도 있었다.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가 뿜어낸 아이를

나의 배속에서 키우고

그 아이를 안고 업고 먹이고 가르치는 내게

어수선한 집안 꼴로 잔소리를 하고

다시 하나의 아이를 더 낳아달라는 듯 새벽을 조르는 남자를

나는 사랑하고 있을까. 나는 사랑하고 있을까.

그러자 그가 운다. 사랑해 달라고

나는 당황한다. 나는 사랑받고 있을까.

나는 당황한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저 사람을 어떻게 하면 사랑해 줄 수 있을까.

그에 품에서 섹스 없이 위로받고 싶은 나는 그를 품에 안아준다.

잘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당신도 나와 같은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잘 모른다.


건축일로 돈 좀 벌어 마누라 갖다 주고 아이들 먹이고 공부시키는 재미면 되는데

일이 조금 잘 풀리지 않자 아내는 불안한 맘에 목소리를 높였고

한 창을 꿈꾸면 좋은 나이 꽃 같은 누나는 불안한 집안과 불안한 세상 사이에서 지고 말았다.

그때, 불안해하던 어머니가 조금만 잘 견디어 주고

아버지는 돈 버는 것 말고 딸과 이야기도 나누어 주고

누나는 부모와 세상과 다르게 자신의 길을 가고

나는 일찍 세상에 나와 나의 살림을 시작했어야 했다.

단칸 월세 방에서 내가 그리는 이야기들은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나의 이야기는 내가 그리는 이야기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지 알려주지 않았던 선생님들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지 알아내지 못하는

나는 당신입니다.


아이들의 아침에 꿈이 없다.

나도 그랬던가.

꿈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꿈꾸고 있었을까.

불과 십 년 전쯤이었는데

나는 그 시간을 지나왔고 아이들은 지금 그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이 아이들이 십년 후가 되고 내가 십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아이들은 나의 꿈꾸는 모습을 알아 볼 수 있을까.

나는 지금 꿈이 없다.

십년 쯤 지난 나는 꿈꾸고 있을까.

십년 후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다른 수많은 이유들에도 불구하고 때마다의 도리.

나는 당신이고 당신은 나입니다.


무거웠던 남편을 보내고 너무 가벼워진 나를 다시 붙잡은 것은 아들이었다.

무거웠던 아버지를 잃고 너무 가벼워진 아들은 나를 붙잡고 있다.

아들은 커갔고 무거워졌다.

아들이 무거워질수록 나는 가벼워졌다.

같이 무거워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같이 무거워질 수 없는 것이 자식과 살아가는 어미의 도리다.

나는 일을 해야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나는 일을 하고 공부를 했다.

나는 공부를 하며 일을 했다.

아들은 아주 조금 더 자랐고 조금씩 가벼워졌다.

나는 공부와 관계된 일을 했다.

나는 일에 대한 공부를 했다.

아들은 무거움을 잃어버렸다.

나는 일과 공부와 무거움과 외로움에 울지 않고 감동해 간다.

아들은 일도 공부도 가벼움도 공허함도 잘 말하지 않는다.

무거웠던 남편이 있었다면 우린 감동도 침묵도 알지 못했을까.

가벼운 나 말고 그였다면 아들은 일도 공부도 무거움도 두려움도 이겨냈을까.

선생의 말을 되새겨 본다.

스스로 살아가는 법과 그렇게 가르치는 사회

내일 나의 글쓰기 수업의 아이들에게 가르쳐야겠다.

아이들은 다 같은 아이들이다.


어제도 술이 나를 잠 재웠다.

다 자란 어른이니까. 엄마는 나를 재워주지 않는다.

나를 재워주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내 술주정에 물 한 잔 내어놓고 이부자리 깔아주던

아내가 사라진 것도 거의 다 잊었다.

내게 아이들이 있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무 어린 아이가 지금의 내 아이일리 없다.

어제의 술도 나를 느끼게 했다.

목청을 지나가는 시원하고 씁쓸한 술은 쓸쓸한 몸을 뜨겁게 하고

관절들의 고통을 잊게 했다.

몸이 기울고 눈이 가물거리면 시간은 뒤섞이고

술을 가져다준 그녀가 아내 같았고,

길을 지나치다 부딪힌 그가 내 청춘을 부려먹은 그 놈 같았고,

엄마 손을 잡고 가는 아이가 나의 아이 같았다.

아무일도 없었겠지.

걱정이 아침을 부르고

집밖으로 나가고 부끄러움이 사라질 때쯤이 되면

억울함이 잠시 떠올랐다 죄책감에 억눌린다.

실수 없었던 어제의 나를 달래며 오늘은 점심 술잔을 기울인다.

밤에 깨어나 밤 산책을 나갈 수도 없으니

오늘은 저녁까지 마시고 잠들어야지 싶다.

아니면 잠깐 자고 새벽에 다시 한잔 해야겠다.

당신은 나와 다른가요.

카테고리 :
시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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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16.07.05
00:19:13 (*.70.1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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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9]지경

2016.07.20
03:39:12
(*.70.114.48)
profile

글안에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보는 나의 다면적인 모습들, 나를 키운 모습들, 내가 만나는 삶들..

우리는 사랑을 잘 알지 못합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접하며

상처를 받고 분노하고 혼자만의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아마도 제때 제대로 된 치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함께 바라보아 주어야 하는 이가 그럴수 없는 형편이라서

때론 그저 눈지그시 바라봄이 필요했을때 그 지지가 주어지지 못해서

누구나가 완벽하지 못해서

세상의 흔들림대로 같이 흔들리는 미약한 존재라서

사랑을 받고자 하고 또 사랑을 받지 못해 외로와 합니다.

 

그럼에도 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삶의 안쪽에서 바라보는 글에

그 아픔을 공감하고 극복하며 이해하려는 당신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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